총선전 의대증원을 밀어붙인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고 있다./대통령실

22대 총선 결과가 국민의힘의 기록적 참패로 기울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민심의 기저에 흐르던 정권 심판론이 지배했던 선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선대위 관계자는 10일 “이번 총선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찬반 투표였다”며 “당의 지지 기반이 강남과 영남, 60대 이상 고령층으로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22대 총선은 2년 전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야당을 이끌면서 사실상 대선 2차전 성격이었다는 평가다. 최종 잠정 투표율도 1992년 14대 총선 이후 총선 투표율로는 32년 만에 최고치인 67%를 기록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 직전까지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중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결국 대선 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유권자들마저 2년 만에 지지를 철회한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서는 작년부터 “총선에서 지면 식물 정권이 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지만 투표 날까지 정권 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국민의힘 후보들은 “백약이 무효한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실제 선거 막판 국민의힘은 접전지라고 자체 파악한 지역구 55~60곳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막말, 부동산 투기 논란 등 악재에 기대를 걸었지만 정권 심판론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여권의 별다른 호재도 없었다. 이종섭 전 호주 대사의 도피 논란과 황상무 전 대통령실 수석의 막말 파문 등으로 “정권이 국민을 이기려고 한다”는 프레임만 강화됐다. 당내에서는 의대 증원 문제를 마지막 총선 변수로 보고 전격 타결을 기대했지만 투표 날까지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야권이 공세를 취한 ‘대파 논란’으로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만 강고해졌다는 지적이다.

집권 여당으로서 ‘야당 심판론’과 ‘운동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적 실패라는 분석도 있다. 작년 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판할 때부터 상당수 의원은 “야당과 말싸움하며 존재감을 키운 한 위원장의 캐릭터상 중도 외연 확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1월 ‘윤·한 갈등’ 이후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적극적인 차별화에 나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현역 의원들을 대거 그대로 공천하면서 인물 구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6일 부산 북구 화명역 앞에서 박성훈 후보, 서명수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대신 국민의힘은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을 앞세워 야당을 ‘범죄자’ ‘쓰레기’로 공격하는 한 위원장 발언 수위는 높아졌다. 야권 관계자는 “이재명·조국의 사법 리스크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며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불만이 더 크다는 것이 여론이었지만 집권 여당으로서 비전 제시나 정책 프리미엄을 내놓지 않은 것은 중대 패인”이라고 했다. 이러한 ‘집토끼 우선 전략’은 결국 지난 총선 수준의 수도권 참패와 함께 ‘미니 정당’ 규모의 ‘도로 영남당’ 성적표로 돌아왔다.

오히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64%)·경북(65.1%) 투표율은 전국 평균 투표율(67%)보다 낮았고, 민주당 텃밭인 호남(광주 68.2%·전북 67.4%·전남 69%)은 평균을 상회했다.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던 지난 대선 당시 결집됐던 보수층과 비교해 이번에는 정권에 실망한 지지층조차 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2030 남성 지지층이 이준석 전 대표의 개혁신당으로 분산되고 유승민 전 의원 등을 품지 못하며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도 근거 없는 낙관을 키웠다. 여권에 불리하게 나온 여론조사를 놓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야당 지지층이 과표집됐다” “‘샤이 보수’가 응답하지 않았다”며 사실상 ‘희망 고문’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위원장은 투표 사흘 전부터 “접전지에서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가 나타났다”며 보수층이 결집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선거 결과는 기존 여론조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번 총선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4050세대와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고령층의 세대 대결 구도로도 주목받았다. 국민의힘 역시 60대 이상 지지층의 높은 투표율에 기대를 걸며 사전 투표 참여를 적극 독려했지만, 2030세대와 부동층에서 오히려 지지를 잃으며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5~6일 사전 투표 결과 60대(22.69%)가 가장 많이 참여했고 50대(22.51%), 40대(15.65%), 70대 이상(14.97%)순이었다. 20대는 12.92%, 30대는 11.26%였다.

고령층의 높은 투표율을 토대로 국민의힘 승리를 예측했던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60대 이상 고령층에서조차 정권 심판 행렬에 상당수 동참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9회말 2아웃 구원투수로 올라온 한 위원장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이변은 없었다. 선거는 야구가 아니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