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1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 회견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3층에 들어섰다. 한 위원장이 임명했던 장동혁 사무총장이 한 위원장 옆을 지켰다. 회견장에선 이만희 선대위 종합상황실장과 홍석준 부실장, 김형동 비서실장 3명이 회견을 지켜봤다.
100여 일 전인 작년 12월 말 한 위원장이 같은 장소에서 비대위원장직 수락 연설을 할 때 한 위원장에게 공천 눈도장을 찍으려던 현역 의원 수십 명과 당내 인사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취재진의 자리조차 부족했던 때와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한 위원장은 이날 “민심은 언제나 옳다.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저부터 깊이 반성한다”며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겠다”며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어디에서 뭘 하든 나라를 걱정하며 살겠다”고 했다.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저는 제가 한 약속은 지키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총선 기간 자신이 선거 이후 유학을 떠날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을 부인하며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정치 데뷔 석 달 만에 보수 진영 대선 후보 1위를 달려왔던 한 위원장을 놓고 당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치적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애초 한 위원장의 정치 스케줄은 ‘구원투수’로 올라왔던 총선을 마무리하고 전당대회 출마로 당 대표를 거쳐 2027년 대선 후보로 직행하는 코스였다는 게 정치권 관측이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난 기록적 참패로 이 같은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공천 과정에서 한 위원장과 갈등을 쌓은 친윤 그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총선 패배의 제1 책임은 한 위원장”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원톱’으로 총선을 진두지휘한 만큼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위원장의 중앙 정치 무대 복귀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평가도 많다. 이번 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정권 심판론으로 치러진 만큼 한 위원장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신평 변호사는 라디오에서 “한 위원장이 총선 패배에도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핵심은 대중적 호감도의 유지 여부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는 2020년 4월 총선 직전 보수 진영에서 가장 높은 20%대 대선 후보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21대 총선 참패 직후 한 자릿수로 고꾸라졌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통화에서 “한동훈의 힘은 윤석열 대통령이 밀어주고 한배를 탔을 때 나왔다”며 “구원투수로 올라온 선거에서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기대가 꺾인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기존 보수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젊은 리더의 모습을 한 위원장이 보여준 것도 사실”이라는 평가도 있다.
향후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야당으로 입법 폭주를 하고, 이재명 대표 등의 사법 리스크가 재조명될 경우 한 위원장이 다시 정치권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당 관계자는 “당분간 대중이 또다시 한동훈을 부를 때까지 기다린다면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정치인 한동훈’의 복귀 시점까지 여백을 채우는 것은 한 위원장 본인 몫이다. 보수의 책사로 불렸던 윤여준 전 장관은 “얼마나 오랫동안 정치적 책임을 지고 공백을 가져야 하는지는 기준마다 다르겠지만 총선에서 졌다고 영원히 정치하지 말라는 법은 아닐 것”이라며 “수직적 상명하복 문화의 검사티를 벗고 앞으로 국민에게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고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이냐에 따라 정치인 한동훈의 행로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