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이른바 ‘감사완박(감사원 권한 완전 박탈)’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전세사기특별법 등 법안 7건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행정부 권한 약화를 시도하거나 21대 국회 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불발된 법안들이다. 이로써 민주당이 22대 국회 출범 후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은 42건으로 늘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당론 법안이 너무 많아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법안이 태반”이란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법안에 대한 찬반 숙의(熟議) 절차는 필요 없다는 듯 무조건 밀어붙일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감사원법, 국가정보원법, 전세사기특별법, 노란봉투법,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가맹지역본부 권리 강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안전운임제 재시행), 일명 ‘구하라법(양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친부모에 대한 상속을 제한하는 민법 개정안)’, 범죄피해자보호법(범죄 피해자 구조금 제도 개선) 개정안 등 법안 8건을 논의했다. 이 가운데 국정원법 개정안을 제외한 7건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이 이날 의원들에게 배포한 법안 설명 자료만 168쪽에 이른다. 하지만 법안 7건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는 1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별로 토론에 집중 안 하시는 분이 계셔서 ‘자유 토론 없어도 될까요’라는 사회자의 물음이 있었고, 우렁찬 답변 속 해산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날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들은 대부분 정부·여당의 반대가 예상되는 쟁점 법안이다. 감사원법 개정안은 감사위원회의 승인 없이 감사원 사무처의 감사 착수, 계획 변경, 중간 결과 발표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국회와 감사위원회를 통한 감사원 통제를 강화하는 법안인 것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를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세사기특별법과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은 지난 국회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폐기된 법안들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들을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전에 나설 태세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가급적 7월 임시국회 내 노란봉투법과 전세사기특별법, 이전에 당론으로 채택된 민생 회복 지원금 25만원 관련 법, 농가를 지원할 수 있는 법 등 민생 법안은 통과시키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란봉투법만 해도 재계가 강력 반대하고 있어 설득과 협상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가맹사업법, 안전운임제법도 관련 재계 반발이 크다. 그러나 민주당은 ‘무조건 통과’에 치중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당론 법안 상당수는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도 ‘친명 지도부’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상황이라 민주당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이견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민주당은 최근 당론을 따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천 심사 때 불이익을 주는 내용을 추가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의원 개개인의 소신 투표나 이견 개진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최근 당론으로 발의한 검사 4인 탄핵소추안 본회의 표결 때, 박상용 검사 탄핵안에 대해 기권표를 던진 곽상언 의원은 당내 비판에 몰려 결국 원내부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이와 관련,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날 “(곽 의원이) 특별한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론 채택 여부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당론 법안 등이 너무 많다 보니 뭐가 당론인지 아닌지 모르고 투표에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솔직히 소속 상임위 관련 법안도 세세히 알기 어려운데 다른 상임위 관련 법안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엔 “의원들이 거수기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크다”는 불만도 올라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