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은 2015년 한 마을을 지나 무등산국립공원 내 야영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마을 번영회장은 도로가 자기 식당 앞을 지나야 한다며 경로를 바꿔 달라고 했다. 당시 부군수가 이 요구를 들어주면서 원래 직선이었던 도로가 굽이길로 바뀌었다. 감사원은 부군수가 도로 계획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화순군에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 산하 연구 기관인 감사연구원이 “지방자치단체 인허가권이 지역 유력 인사에 대한 특혜와 사익 추구에 남용되고 있다”며 지적한 사례 중 하나다. 감사연구원이 2017~2021년 5년간 감사원과 행정안전부, 시도 감사 기구가 감사한 내용 전체를 분석한 결과, 최근 지자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늘었고, 특히 지자체 고위 공무원들의 비리가 인허가를 비롯해 인사(人事)와 사업 계약, 보조금 지급 분야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단체 부패 실태 및 제도적 취약 요인 분석’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보고서는 대검찰청 범죄 통계를 인용해, 직무유기·직권남용·뇌물 등 직무 관련 범죄를 저지른 중앙·지방 공무원이 2016년 1425명에서 2020년 1716명으로 연평균 6.5%씩 늘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범죄는 2016년 146명에서 2020년 226명으로 4년 만에 54.8% 늘었다.
지방 공무원만 놓고 보면, 이들의 직무 관련 범죄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면서 감소했다가 문재인 정부 시기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 시기(2008~2012년)에는 연평균 676명의 지방 공무원이 직무 관련 범죄에 연루됐으나, 박근혜 정부 시기(2013~2016년)에는 연평균 580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2017~2021년)에는 연평균 696명으로 박근혜 정부보다 20%, 이명박 정부보다 3% 많았다.
유형별로 보면, 인사 비리가 43.8%로 가장 많았다. 계약(12.5%)이나 보조금 지급(7.8%), 인허가(4.7%) 관련 비리가 뒤를 이었다. 인사 비리는 승진이나 직원 선발 시 정해진 기준을 무시하거나 이해관계자가 심사에 참여하는 경우, 기관장이 친인척이나 지인을 승진이나 채용 대상자로 점찍어 두고 해당자를 선발하도록 압력을 가한 경우 등이었다. 인천 연수구 시설공단에서는 2019년 직원 채용 과정에서 자격 미달로 탈락한 응시자에 대해 이사장이 “입사 지원서에 쓰지 못한 경력이 있을 수도 있고, 추후에 서류 입증이 가능하다고 한다. 합격에 준해 처리하라”고 지시해 해당 응시자가 최종 합격하는 일도 있었다.
사업 계약, 보조금 지급 등 금전 관련 비리는 절반(50.0%)이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일어났다. 특정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하기 위해 최소한의 심사조차 하지 않거나 규정에 없는 수의계약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무리하게 사업자 선정을 하다가 적발된 사례는 대부분 지자체 공무원과 사업자가 미리 틀을 잡아놓고 진행한 경우였다. 지자체 공무원과 사업자가 ‘부패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부패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주된 원인으로는 사업 타당성 검토 과정이 미흡하거나(36.7%) 내부 통제 체계가 철저하지 않기(22.3%) 때문이었다. 지자체장이 선거로 뽑히다 보니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를 임의로 적용(13.0%)하는 것도 원인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대개 이런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패 고리를 이룬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지역 토착 세력, 지역 업체 등과 쉽게 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부패로 이어질 경우 주민들 안전을 위협하거나 공공 부문 공정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