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인권과 청소년 보호, 재외동포 협력 등 공익사업을 벌이겠다며 시민 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은 뒤 이를 조직적으로 빼돌린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시민 단체 10곳 대표와 관계자 등 73명을 횡령과 사기, 보조금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16일 밝혔다. 감사원이 확인한 횡령 규모는 17억4000여 만원에 달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시민 단체 관계자들은 가족과 지인들이 정부 보조금 사업을 위해 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인건비를 받아 챙기는가 하면, 납품 업체와 짜고 물품이나 용역 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회계 부정도 벌였다. 가족 명의로 만든 유령 회사에 정부 사업과 관련된 일감을 주고 대금을 챙기는 수법도 동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A 정책센터 대표 신모씨는 2018년 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에 참여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출근해야 했지만, 제대로 출근한 날은 100일 중 27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씨는 모두 정상 출근해 업무를 본 것처럼 문서를 허위로 꾸몄고, 인건비 665만원을 받아 챙겼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센터가 받은 보조금 1억원 중 3100만원을 인건비 명목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가 집중된 경기 안산시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과 관련, 보조금을 횡령한 시민 단체도 적발됐다. B 청년회는 안산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역사와 인문학 독서 토론을 하겠다는 명목으로 보조금을 타낸 뒤, 이 가운데 380만원을 ‘북한 제도 탐구’ 등에 쓴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김정은 신년사와 김일성 항일 투쟁 등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C 운동본부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병영 독서 활성화 지원 사업’을 수행하며 매년 20억~30여 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왔다. 이 단체 대표인 민모씨가 빼돌린 것으로 감사원이 확인한 금액만 10억5300만원에 달했다. 민씨는 단체 회계 담당 직원과 짜고, 직원의 남편과 지인 등 19명을 독서 강사로 등록한 뒤 이들에게 지급한 강의료 1억1800만원을 챙겼다. 강의 때 거는 현수막을 실제보다 비싸게 납품받고 차액을 돌려받는 등 방식으로 7억4500만원을 횡령했다. 민씨는 빼돌린 돈을 명절 선물 구입비나 골프·콘도 이용료, 자녀 주택 구입 자금 지원 등 사적인 용도로 썼다. 손녀 승마용 말 구입과 유학비에 보태기도 했다.
감사원은 허위로 인건비를 신청해 3억6600만원을 빼돌린 동식물 보전 사업 단체 대표, 용역비 뒷거래로 1억6200만원을 횡령한 청소년 보호 관련 단체 대표 등에 대해서도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특별조사국이 감사를 진행한 결과”라며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감사 결과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