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시설을 건설·관리하는 국가철도공단이 실적을 2004년부터 18년 넘게 부풀렸고 그 총액이 4조원 이상인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4일 드러났다. 매년 수천억원대 순손실이 수백억원으로 축소되거나 수백억원 순이익으로 뒤바뀌었다. 이렇게 과대 계상된 총 규모는 4조2156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철도공단은 부풀린 실적으로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평가는 철도공단 임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의 근거가 됐다.
철도공단의 분식 혐의가 18년 동안 적발되지 않은 것은 철도공단이 감사원의 상시적 결산 검사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공공기관 347곳 중 25곳(7.2%)만 감사원의 매년 검사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감사원이 나머지 322곳 중 철도공단 등 10곳을 시범적으로 골라 들여다봤더니 철도공단에서 거액의 회계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철도공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했다.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공공기관 회계처리 적정성 점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공단은 국내 모든 고속철도에 대한 ‘시설관리권’을 갖고 있다. 이 권리를 근거로 철도공단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수서고속철도)로부터 고속철도 사용료를 받는다. 철도공단은 이 시설관리권의 장부상 가치를 2021년 말 기준 11조2439억원으로 잡아놨다.
이런 자산 가치는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상각)해야 한다. 다른 도로·철도 관련 자산은 모두 30~50년에 걸쳐 가치가 상각된다. 그런데 철도공단은 2004년 창립 이후 2021년까지 18년 동안 시설관리권의 가치를 단 1원도 상각하지 않았다. 상각에 따른 비용 발생을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철도공단이 시설관리권 가치를 정상적으로 상각했다면 그만큼의 영업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계산됐을 것이고, 철도공단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도 매년 상각액만큼 감소했을 것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도 감사원에 ‘철도공단이 시설관리권을 장기간 전혀 상각하지 않은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그 결과 매년 2000억원 이상의 실적이 부풀려졌다. 감사원이 철도공단이 창립한 2004년부터 고속철도 관련 부채를 모두 갚게 되는 2051년까지 48년에 걸쳐 시설관리권 11조2439억원을 상각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철도공단 실적을 다시 계산했더니 2021년의 174억원 순이익도 2168억원의 순손실로 바뀌었다. 앞서 철도공단은 2010~2016년에 매년 73억~3174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공시했지만, 실제 순손실 규모는 2415억~5516억원이었다. 2017~2019년에는 매년 1215억~1717억원 순이익을 냈다고 보고됐지만, 실상은 625억~1129억원 순손실이었다.
철도공단은 실적 부풀리기로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 철도공단에 대한 최근 5년간 경영평가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철도공단은 2017~2019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재무 구조 개선이 이뤄졌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019년 다른 공공기관들과의 상대 평가에서도 ‘A’ 등급을 받았다. 2021년엔 순이익을 냈다며 2022년 기관장 보수를 3000만원 넘게 올리기도 했다.
감사원은 철도공단에 “시설관리권에 대한 상각 방법을 회계 기준에 맞게 정액법(매년 일정 금액 상각)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철도공단은 기존 실적을 고쳐 4조원 이상의 손실을 반영하거나 앞으로 수십 년간 매년 수천억 원을 추가로 상각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