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가 2017년 ‘고위직 임직원 수를 줄이라’는 조건부로 방송 재허가를 받은 뒤 이를 지키지 않았는데도, 방송통신위원회가 2020년 방송 재허가를 내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같은 해에 방통위는 TV조선에 대해서는 심사 점수를 조작해 재승인 유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낮췄다. 문재인 정부 시기 방통위가 정권에 가까운 방송사에는 특혜를 주고,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사에는 불이익을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원이 28일 공개한 방통위 정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KBS는 2017년 10월 감사원 감사에서 ‘전체 임직원 중 2직급 이상 상위 직급자의 비율이 60%에 달한다’며 ‘과다한 상위 직급자 비율을 감축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방통위도 그해 말 KBS에 방송 재허가를 내주면서 감사원이 지적한 사항을 반영해 ‘상위 직급 비율을 감축하고 직급별 정원을 조정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후 KBS는 이를 이행하지 않아 두 차례 시정 명령을 받았고, 2019년 10월에야 방통위에 ‘직급별 정원을 재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KBS는 상위 직급 정원을 오히려 늘렸다. 기존에는 ‘관리직급’부터 ‘2직급 을’까지 직급 4개가 상위 직급이었고, 이 네 직급에만 2765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위쪽 두 직급의 정원은 401명이었다. KBS는 이 정원을 323명으로 줄였지만, 그 위에 ‘옥상옥’으로 직급 3개를 더 만들어내, 그 정원을 763명으로 정했다. 그 결과, 상위 직급 전체 정원은 2765명에서 2820명으로 오히려 55명 늘었다.

그런데도 2020년 9월 방통위는 KBS가 직급 2개의 정원을 일부 줄였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KBS가 재허가 조건을 이행했다’는 결론을 내려줬다. 그 뒤 2020년 12월 KBS는 ‘상위 직급 정원 감축’ 조건이 달리지 않은 채로 재허가를 받았다. 지난달 발표된 KBS의 지난해 경영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KBS 임직원 1인당 평균 임금은 1억29만원, 1억원 이상 받는 직원 수는 50.6%에 달한다.

반면 방통위는 2020년 3월 TV조선에 대한 재승인 심사에서는 TV조선이 650점을 웃도는 점수를 받자,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 2명에게 이 점수 집계 결과를 알려줘, 이들이 특정 분야 점수를 과락선 아래로 낮추게 했다. 당초 점수대로라면 TV조선은 아무 조건이 달리지 않은 채로 앞으로 4년간 방송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점수 조작의 결과로 TV조선은 ‘조건부 재승인’ 대상이 됐다. 방통위는 또 허위 법률 자문 보고서를 근거로 TV조선 재승인 기간도 3년으로 줄였다.

방통위의 TV조선 심사 점수 조작은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드러났고, 이에 따라 한상혁 방통위원장과 방통위 일부 직원이 기소됐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면직됐다.

그래픽=김하경

한편 감사원 감사에서는 방통위 직원들의 기강 해이도 다수 적발됐다. 방통위 한 직원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여간 근무시간 중에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 경기 과천시 경마장에 출입하면서 경마에 100여 차례 돈을 걸었다가 적발됐다. 다른 방통위 직원들은 방통위 전산 시스템 구축 용역을 맡긴 민간 업체가 시스템을 완성하지 못했는데도 정상적으로 완성된 것처럼 처리해 줬다. 그 결과 이 민간 업체는 용역비 3억여 원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었다. 이 직원들은 이 민간 업체에 ‘시스템 유지 보수’를 명목으로 9000여 만원짜리 일감을 추가로 주기도 했다. 또 다른 방통위 직원들은 교육 실적이 부족해 승진 대상이 될 수 없는 일부 직원의 교육 실적을 부풀려 계산해 승진 대상에 올려줬다가 적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