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시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을 마치고 태양광 시설을 돌아보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전기요금을 재원으로 추진한 신재생 에너지 지원 등 사업에서 8440억원에 달하는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이번 조사는 최근 5년간 약 12조원이 투입된 사업의 절반가량인 약 6조원어치 사업을 점검한 결과로 나온 것이어서, ‘신재생 비리’로 인한 공적 기금 피해 전체 규모는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단장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지원 사업과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사업, R&D(연구·개발) 사업 등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농림축산식품부 등과 함께 2차 점검을 한 결과, 5359건, 5824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추진단은 지난해 10월 1차 점검에서도 2267건, 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확인했다. 1·2차 점검에서 적발한 비리 규모를 합하면 7626건, 8440억원에 달한다.

이번에 비리가 적발된 사업들은 전기요금의 3.7%를 부가 징수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을 재원으로 삼아 추진한 것으로, 신재생 사업 관계자들이 국민들이 낸 전기요금의 일부를 불법적으로 나눠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력기금으로 추진한 사업의 전체 규모는 약 12조원에 달하고, 1·2차 점검은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약 6조원어치 사업을 들여다본 것이다.

추진단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업의 전반적인 부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금융 지원 사업, 보조금 사업, R&D 등에서 다수의 관리 부적정, 위법·탈법 사항이 확인됐고,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을 위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활성화 정책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비리가 발견된 분야는 금융 지원 사업이었다. 정부는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세금 계산서 등으로 증빙하면,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대출해줬다. 그런데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실행된 대출 6607건, 1조1325억원어치를 추진단이 확인해 봤더니, 6745억원어치 부정이 확인됐다. 1건 대출에서 여러 가지 부정이 있었던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태양광 대출’의 상당수에 부정이 개입돼 있었던 것이다.

1937건, 3080억원(27.2%)어치는 대출이 실행된 이후에 세금 계산서가 취소됐거나 금액이 줄어들어 재발행된 경우였다. 축소된 금액이 실제 공사비에 가깝다면, 당초 부풀린 금액만큼 대출을 더 받은 것으로서 ‘사기 대출’에 해당한다. 대출 받을 당시 증빙한 금액이 실제 공사비에 가깝고 나중에 취소·축소한 금액이 허위라면, 세금 계산서를 발행한 쪽이 매출을 축소해 세금을 탈루한 경우에 해당한다.

549건, 974억원(8.6%)어치는 대출의 근거가 된 세금 계산서가 아예 가짜였다. ‘포토샵’ 등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으로 가짜 세금 계산서를 만들어내 이를 제출해서 대출을 받은 것이다. 286건, 398억원(3.5%)어치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을 만들어놓고 여기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짓겠다며 대출을 받은 경우였다. 농지에 태양광 시설을 지을 때는 별도의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206건, 401억원(3.5%)어치는 태양광 사업자가 세금 계산서 등으로 증빙한 공사비 금액보다 대출이 많이 나갔다.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 직원이 실수를 했거나, 사업자와 유착해 불법 대출을 해준 경우다.

지난해 1차 점검에서도 이와 별개로 1129건, 1847억원(16.3%)어치 대출과 관련해 태양광 사업자들이 무등록 업체와 계약하거나 하도급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등 위법·부당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은 아니지만 전력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사업’에서도 1791건, 574억원의 위법·부당 사례가 발견됐다. 이 사업은 화력·수력·조력 등으로 발전을 하는 시설이 있는 지역에 보조금을 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정부가 확인해 보니, 보조금을 받은 마을회가 이 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인 뒤 임의로 매각하는 등 특정인에게 부당하게 경제적 이득을 준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100건, 232억원어치 적발됐다. 한 마을회는 마을회관 건축을 하겠다며 보조금 4000여만원을 받아 임야를 구입한 뒤 마을회관은 짓지도 않고 방치했는데, 이 임야는 도로가 연결돼 있지 않은 맹지(盲地)였다. 다른 마을회도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보조금을 5200여만원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으나 실제 창고를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자기 6촌에게 되팔았다가 적발됐다. 다른 마을회도 체육 시설을 짓겠다며 보조금 6200여만원을 받아 부지를 샀지만, 부지는 마을회장 배우자에게 되팔렸다.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사업을 하겠다며 산업부로부터 보조금을 타낸 지자체가 산업부를 속이고 보조금을 엉뚱한 데 쓰다가 적발된 경우도 173건, 115억원어치에 달했다. 한 군(郡)은 타낸 보조금을 기한 내에 전부 다 쓰지 못하고 23억5000여만원이 남자, 이를 이월·불용 처리 등 정상적인 회계 처리를 하지 않고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다른 군은 보조금 5억5000여만원을 다른 곳에 써 놓고 산업부에는 정상적으로 집행했다고 허위 보고했다. 한 시(市)는 보조금 4000여만원을 빼돌려 시 공무원들이 쓰는 관용차를 사는 데 썼다.

전력기금을 재원으로 추진된 전력 분야 R&D 사업에서도 172건, 266억원의 부정이 적발됐다. 연구 결과가 부실해 연구가 중단됐는데도 연구비를 회수하지 않거나, 연구는 완료됐지만 정산을 하지 않아서 남은 연구 자금을 회수하지 않은 경우, 연구 과제를 수주한 연구진이 연구비를 횡령한 경우 등이었다.

정부는 이번 점검에서 적발한 비리와 관련해 626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85건은 담당자 문책을 요구하기로 했다. 또 관계 기관들은 위법·부당하게 나간 대출이나 보조금 가운데 회수·환수해야 할 금액을 특정하는 대로 회수·환수를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