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모습./장련성 기자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지급률을 결정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은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도 평가위원으로 위촉돼 점수를 매겼고, 평가 주관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들이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경우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다수를 평가위원으로 다시 위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평가 위원들은 몇몇 항목에 대한 점수를 잘못 매긴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여러 기관들 간의 ‘종합 순위’를 유지시키기 위해 다른 항목 점수를 깎는 등 ‘엉터리 평가’를 한 사실도 확인됐다.

평가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고 평가 담당자를 속인 공공기관도 적발됐다. 이 기관 임직원들은 이런 조작을 통해, 원래 점수대로라면 한 푼도 받지 못했어야 할 성과급을 78억여 원 챙겼다. 이렇게 공공기관 임직원들이 부당하게 타낸 성과급의 원천은 국민들이 낸 세금과 공공요금이다.

감사원이 23일 공개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운영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재부는 2008년부터 매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100여곳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한다. 대학 교수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민간 전문가들을 위촉해 ‘경영평가단’을 구성하고, 이들이 각 기관에 대해 미리 정해진 평가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한다. 점수를 종합해 가장 높은 ‘S’에서 가장 낮은 ‘E’까지 6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임직원들이 성과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반면 ‘D’·'E’ 등급을 받으면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기관 차원에서 ‘경영 개선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임원은 경고를 받거나 해임된다.

그런데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경영평가단 구성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 평가 대상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수주하거나 강의를 의뢰받은 사람은 평가위원으로 위촉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평가위원 임기 동안 이런 활동을 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는 해촉되고, 이후 5년간 평가위원으로 다시 위촉될 수 없다.

그러나 2018~2020년에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323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56명(48.3%)이 평가 대상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에 위촉된 A교수는 그해 4월부터 12월까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문에 응해주고 한 번에 30만~500만원씩 9차례에 걸쳐 1755만원을 받았다. 역시 2018년에 위촉된 B교수는 임기 중에 국가철도공단 등 9개 공공기관으로부터 26차례에 걸쳐 ‘자문료’, ‘심사료’, ‘회의 참석비’ 등의 명목으로 970만원을 받았다.

기재부는 이런 사람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기 전에 검증을 통해 걸러내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이 누구에게 돈을 주고 있는지를 기재부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기재부도 자료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으면서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 2020년에 위촉된 C교수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임기 중에 2차례에 걸쳐 670만원을 ‘수당’ 명목으로 받았지만, 한수원은 이 사실을 기재부에 알리지 않았다. 기재부도 ‘최근 5년간 모든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돈이 도합 1억원 이하면 괜찮다’ 등의 기준을 임의로 세워, 자격 미달 인사들을 위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이와 관련해 기재부는 “내부 기준을 마련해 공공기관의 임직원으로 근무했거나 용역 또는 강의 경력이 있는 자가 평가위원으로 위촉되지 않도록 관리 중”이라며, “회의 참석 여비 등 실비를 변상하는 차원에서 공공기관이 회당 100만원 이하로 지급을 한 사람의 경우에는 위촉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가위원들이 점수를 임의로 뜯어고쳐 온 정황도 확인됐다. 각 기관을 평가하는 지표는 30가지, 여기에 딸린 세부 평가 내용은 87가지에 달한다. 그런데 평가위원들은 2019년에만 401개 항목의 점수를 중간에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합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정당한 이유 없이 임의로 점수를 고치거나, 점수 부여를 잘못한 것을 덮기 위해 다른 항목 점수에까지 손을 댄 경우였다.

2019년 경영평가에서는 ‘사회적 가치 구현’ 항목에서 평가위원들이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국가철도공단,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아시아문화원 등 4개 기관에 등급을 잘못 부여했다. 이를 정정하자 종합 등급이 바뀌게 되어, 다른 기관들과 함께 매긴 순위까지 바뀔 상황이 됐다. 그러자 평가위원들은 ‘노사관계’, ‘안전 및 환경’ 등 다른 항목 점수를 임의로 깎아서 종합 등급이 변하지 않게 했다. 순위에 점수를 끼워맞춘 것이다.

한국도로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전력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LH)·코레일 등 5개 기관은 2019년에 중대 재해를 일으켰고, 원칙대로라면 해당 항목에서 2~3등급 감점돼야 했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은 ‘감점이 과하다’며 코레일은 봐주고, 나머지 4개 기관은 1등급만 감점하는 것으로 바꿨다. 반대로 울산항만공사와 부산항만공사는 2019년 실적을 평가하는데, 2020년에 안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는 이유로 감점을 했다. ‘국민 눈높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두 공사에서 일어난 사고는 중대 재해가 아닌 경미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중부발전에 대해선 사망 사고가 났는데도 ‘회사 책임인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점을 하지 않고, 오히려 2차례에 걸쳐 점수를 올려 줬다. 그래놓고는 ‘그래도 사망 사고가 났는데 종합 등급이 높게 나오면 국민 정서에 위배될 수 있다’며 안전 문제와 관련 없는 ‘일자리 창출’ 등 9개 항목을 감점해 전체 등급은 낮췄다.

기재부는 평가위원들이 이렇게 평가 규정과 기준을 무시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는 “평가는 경영평가단의 고유 권한으로, 기재부가 이들이 기준을 준수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기재부가 감독을 하지 않는다면, 경영평가의 주체인 기재부가 자기의 기본 임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2018년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인건비 인상률을 실제보다 낮아 보이게 조작했다가 적발됐다. 당시 평가 규정에 따르면, 임직원 총인건비 인상률이 2.6% 이하여야만 관련 항목에서 3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난방공사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에게 지급한 복리후생비를 ‘실집행액’으로 산정하면 총인건비 인상률이 2.6%를 넘고, ‘인원 비례’ 방식으로 산정하면 2.59%가 된다는 것을 알고, 평가 실무자에게 인원 비례 방식으로 산정한 숫자를 제출했다. 평가 실무자가 증빙 자료를 요구하자, 지역난방공사는 ‘실집행액으로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이런 방법으로 실제 받았어야 할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종합 등급 ‘C’를 받았다. 그 결과로 지역난방공사 임원은 기본연봉의 10%까지, 직원은 월 기본급의 25%까지를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었다. 성과급은 총 78억여원이었다. 원칙대로 ‘D’나 ‘E’ 등급을 받았다면 전혀 지급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지역난방공사는 “자료 제출에 있어 고의성은 없었음을 감사원에 수 차례 소명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감사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역난방공사는 또 무기계약직 복리후생비 계산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계산 오류가 발견됐다면서, 이를 반영하면 “최종적으로 총인건비 인상률 한도인 2.6%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경영 실적 보고서 및 첨부 서류를 거짓으로 작성·제출한 것은 변함이 없으므로, 성과급 수정(회수) 등 조치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2021년 1월 기재부에 최근 5년 치 경영평가 관련 자료를 제출을 요구했으나 기재부가 제출을 거부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기재부는 평가 실무를 수행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도 보유 자료를 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득점 집계표 등의 자료가 ‘비공식 참고 자료’일 뿐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기재부는 6개월 뒤 감사원이 업무용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봉인 조치한 뒤에야 자료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