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2017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불법적인 통계 자료 제공 요구를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이 지속적으로 거부하자, 청와대가 통계청 직원들과 연락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황 전 청장은 통계 조작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청장은 2018년 8월 취임 13개월 만에 문 전 대통령에 의해 전격 경질됐다. 후임으로 임명된 강신욱 청장은 “장관님들의 정책에 좋은 통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했고, 고용 통계를 직접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에 수사 요청됐다.

19일 감사원에 따르면, 홍장표 당시 경제수석을 비롯한 문 정부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은 임기 초인 2017년부터 통계청에 소득·고용 관련 통계를 비롯한 각종 통계의 기초 자료를 보낼 것을 요구했다. 통계 조사 대상 각각의 개인 정보 등이 담긴 원자료를 달라는 요구였다. 통계법상 자료 제공은 이미 작성·공표된 통계에 한해서, 기록을 남기는 등의 일정한 형식과 절차를 거쳐서만 가능하다. 청와대의 요구는 합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황 전 청장은 청와대의 이런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통계청 직원들에게도 “청와대에 통계법을 위반해서 자료를 주지 마라”는 지시를 반복해서 내렸다. 통계청 직원들도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이 무리한 요구를 할 때마다 ‘해당 자료 제공은 통계법에 저촉돼 불가하다’고 설명하는 문서를 보냈다.

그러자 청와대는 황 전 청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청와대 한 수석은 2018년 4월 황 전 청장을 직접 만나 ‘다른 기관들은 (작성 중인) 통계 자료 사전 제공을 잘하는데, 왜 통계청만 잘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당시는 청와대가 한국부동산원에서 작성 중인 아파트 가격 상승률 통계를 미리 받아보고 부동산원을 압박해 상승률 통계를 조작하고 있을 때였다.

황 전 청장은 2018년 8월 갑작스럽게 경질됐다. 그는 이임식에서 “통계청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임식 직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경질 사유는) 모른다. 그건 인사권자의 생각이다”라며 “어쨌든 제가 그렇게 (청와대의)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2017년 10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그러나 통계청 일부 직원은 황 전 청장 재직 중에 이미 청장 몰래 통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 일부 간부는 2017년 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로 따로 불려가 ‘소득 통계가 좋게 나와야 한다’는 취지의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첫 분기였던 2017년 2분기에 대한 통계청의 ‘가계 소득 동향’ 조사에서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가계 소득이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자 일부 통계청 직원은 가중치 기준을 바꿔 가구 소득이 오히려 증가한 것처럼 나오도록 했다.

통계 계산 방식을 무단으로 바꾸는 것은 불법이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 직원들은 2017년 8월 황 전 청장에게는 기존의 방식으로 계산된 통계 수치를 공표하겠다는 문서를 올려 결재를 받고, 대외적으로는 조작한 통계 수치를 공표했다. 청와대도 조작된 값을 받아봤다. 통계청 직원들은 감사원 조사에서 “황 전 청장이 외부(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이라, 새로운 방식으로 계산한 것을 보고하면 통계 신뢰성을 의심할 것 같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청 직원들이 무단으로 변경한 계산 방식은 이듬해 5월 조사에서 문제가 됐다. 이 계산 방식은 가구 소득은 커 보이게 하지만 소득 분배는 악화된 것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통계청 직원들은 가중치 계산 방식을 원래대로 되돌려 만든 통계를 올려 황 전 청장에 보고했다. 황 전 청장은 계산 방법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 이 통계를 해설하는 보도 자료는 그 문구도 아예 청와대의 직접 지시를 받아 고친 뒤 황 전 청장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배포했다.

황 전 청장은 통계청 직원들이 자기를 속였다는 것을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 감사원은 황 전 청장이 통계 조작을 알지 못했다고 보고, 그를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