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무상 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에서 임원으로 있으면서 직원들을 상대로 매관매직(賣官賣職)을 한 송모씨에 관한 감사원 감사 보고서가 27일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송씨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코이카의 인사·계약을 담당하는 임원으로 있으면서 직원과 자회사 대표 등 22명으로부터 3억8500만원을 받고 이들에게 임원 선임, 승진, 전보 등 인사상의 특혜를 줬다.

송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활동했던 부산YMCA의 사무총장 출신으로, 2017년 당시 코이카 이사장이 이른바 ‘적폐 청산’을 위해 만든 코이카 혁신위원회에서 간사로 활동했다. 이듬해 2월 비영리 민간 단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코이카 상임이사에 임명됐다. 보직은 사회적가치경영본부 이사이자 인사위원장으로, 코이카의 인사와 계약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감사원에 따르면, 송씨는 상임이사가 된 지 7개월 만인 2018년 9월부터 직원들로부터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차용증도 쓰지 않았고 무이자였던데다가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도 없었으므로 거저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이카 간부 직원인 A씨는 2018년 9월 5일 몽골에 출장 가 있는 송씨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았다. 송씨는 “자금이 부족하다”며 5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고, A씨는 돈을 보내줬다. 송씨는 12월 21일에는 업무 관련 논의를 위해 집무실에 찾아온 A씨에게 “은행 대출이 진행 중인데 자금이 필요하다”며 1000만원을 또 빌려달라고 했다. 송씨가 이런 식으로 A씨로부터 빌린 돈은 2550만원에 달했다.

송씨는 A씨에게 빚은 갚지 않고 인사 특혜를 줬다. 송씨는 2019년 5월 해외 사무소에 파견할 직원을 선발하는 인사위원회를 주재하면서, 특정 국가 사무소장직을 1지망으로 지원한 A씨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A씨는 나중에 감사원 조사에서 “송씨가 시민단체 출신이고 자녀를 키우는 시기에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에 돈을 빌려준 것이고, 상급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가 해외 사무소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인사위원회에서 공정하게 선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씨가 인사 부서 실장으로 승진시켜 자기 직속 부하로 만든 B씨는 2019년 10월 18일 송씨가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지금 모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받고 있는데, 대출 승인을 받으려면 2금융권에서 받은 대출을 먼저 상환해야 한다”며 800만원을 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송씨는 이전에도 B씨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고, 이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도 코이카가 국회 국정감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한 것이었다. 마이너스통장을 쓰고 있어서 수중에 돈이 없었던 B씨는 동료 직원에게 800만원을 빌려 송씨에게 건넸다. 송씨는 3개월 뒤에도 B씨에게 500만원을 더 요구했고, B씨는 마이너스통장에서 200만원을 빼 송씨에게 보냈다. B씨는 이듬해 사무소장으로 파견됐다.

외부 출신으로 코이카의 개방형 직위 모집에 응해 2018년 7월 부서 실장으로 채용된 C씨는 그해 10월 송씨 집무실로 호출됐다. 송씨는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며 1000만원을 요구했고, C씨는 며칠 뒤 송씨에게 돈을 보냈다. 송씨는 빌린 돈을 갚는 대신 코이카 돈으로 C씨 연봉을 올려줬다. 2019년 당시 정부 지침상 C씨 연봉 인상률 상한은 3.8%였지만, 송씨는 별도 규정까지 만들어 C씨 연봉 인상률을 5%로 높여주고, ‘인센티브’도 862만원 추가로 지급해줬다.

2018년 하반기 승진 심사를 앞둔 직원 D씨는 2018년 11월 송씨 집무실로 호출돼 1000만원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D씨가 송씨 요구를 들어주자, 송씨는 승진 순위가 한참 낮아 승진 대상이 될 수 없었던 D씨를 위해 D씨의 근무 성적 평가 점수까지 조작해 D씨를 승진시켜줬다.

송씨에게 돈을 빌려준 직원들은 감사원 조사에서 “송씨가 경제적으로 다급한 처지인 것을 알고 돕고 싶은 마음에 돈을 줬다” “송씨의 호소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등의 이유를 댔다. 송씨로부터 그 대가로 인사 특혜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 직원은 없었다. “내 능력과 성과로 승진한 것이다” “연봉 인상은 성과에 따른 보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송씨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이를 거부한 선량한 다른 조직 구성원들도 있었다”며, 돈을 빌려준 직원들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감사 중간 단계에서 송씨와 송씨에게 돈을 준 직원 가운데 15명을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고, 올해 초 검찰은 송씨를 구속 기소했다. 다만 직원들은 검찰이 입건하지 않거나 기소를 유예해 형사처벌은 면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코이카에 송씨에게 돈을 준 직원 가운데 1명은 해임하고, 3명은 정직시키며, 4명은 경징계 처분하라고 통보했다. 송씨는 지난 8월 1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