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해외 출장 당시 가스공사 돈으로 1박에 26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장관급 공무원의 해외 숙박비 상한 95만원의 2.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감사원은 이 밖에도 주요 공기업 및 관계 부처에 대한 감사에서 공기업 법인 카드로 수천만 원을 결제한 공무원, 직원들에게 노트북 PC 수천 대를 뿌린 공공 기관 등 불법·방만 행위를 다수 적발했다.

감사원이 10일 공개한 ‘공공 기관 재무 건전성 및 경영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임원과 고위 간부의 국외 출장 시 숙박비를 무제한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여비 규정’을 두고 있다. 이를 빌미로 가스공사 임원 및 고위 간부들은 2019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국외 출장을 53차례 다녀오면서, 비슷한 직급의 공무원이 여비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7623만원을 더 받아 갔다. 채 전 사장은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으로 3박 5일짜리 출장을 다녀오면서, 3박을 모두 1박에 26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었다. 채 전 사장은 해외에서 총 74일을 묵으면서 숙박비로 하루 평균 87만원을 썼다.

그래픽=박상훈

산업통상자원부 5급 사무관은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산업부로 파견된 직원들에게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897차례에 걸쳐 자기 식사비 등 업무와 무관한 비용 3800만원을 난방공사 법인 카드로 대신 결제하게 했다. 이 사무관은 난방공사 직원들에게 자기 출장에서 운전기사 노릇을 시키거나, 음식물을 사서 자기 집으로 가져오게 하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근무 중인 직원을 강원도 삼척시까지 오게 해 식사비를 대신 내게 한 적도 있었다.

한국남부발전은 한국동서발전과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는 울산시 남구 사택을 2014년 동서발전이 45억원에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이를 거절하고, 자사 간부에게 23억7000만원에 팔았다. 이 간부는 남부발전 전·현직 직원 12명과 일반인 3명 등으로 ‘조합’을 만들어 각자 출자하게 해 사택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이 간부는 사택 매각 담당자에게서 ‘경쟁 입찰자가 없을 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빼내기도 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토지 보상 담당 직원은 자사가 수용한 토지 가운데 영농손실보상금 신청이 없는 토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2016년 말 자기 아버지 명의로 이 토지에 대한 손실 보상을 신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상금 8121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적발됐다.

한국농어촌공사는 77억원을 들여 노트북 5690대를 사들인 뒤 3급 이하 직원 전원에게 나눠줬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직원 12명만 다니는 사내 대학을 운영하면서 LH 퇴직자 57명을 시간강사로 썼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았다.

한편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전기·가스·철도·도로 요금 등 공공요금의 인상을 부당하게 억눌러, 에너지·사회간접자본(SOC) 분야 공기업 16곳의 부채가 2017년 말 271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92조5000억원으로 5년 새 121조2000억원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 부채들이 늘어난 이유를 감사원이 분석해 보니, 공기업이 자체 사업을 잘못해서 생긴 부채는 2조9000억원(2.4%)에 불과했고, 88조5000억원(73.0%)은 정부가 공공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한 것 등의 이유로 발생한 부채였다. 29조7000억원(24.5%)은 정부 업무를 공기업들이 대행하거나 위탁받은 사업의 적자로 생긴 부채였다. 특히 한전과 한국가스공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연료비가 급등하는데도 문 정부가 요금 인상을 무작정 막아 급격히 부실화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