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7월 초, 한국부동산원 주택통계부의 직원 A씨는 청와대와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에게 지난 한 주간 전국의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조사한 통계 보고서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파일로 첨부된 보고서에는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이 전주에 비해 평균 0.02% 올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A씨는 메일 ‘본문’에는 다른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그는 ‘실제 시장 상황은 0.1% 이상으로 보인다’고 썼다. 서울 지역의 실제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부동산원 통계상 상승률의 5배가 넘는다는 이야기였다. 부동산원 통계 보고서는 ‘공식적으로’는 A씨를 비롯한 부동산원 직원들이 전국의 아파트 가격을 조사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A씨는 자기가 직접 만든 통계 보고서를 보내면서 ‘이 통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까지 적어 보낸 셈이다.

이는 당시 A씨를 비롯한 부동산원 직원들이 청와대와 국토부의 압박으로 거짓 통계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원 직원들은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거짓 통계가 시장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하는 글을 청와대와 국토부 등에 지속적으로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이철원

지난 9월 감사원이 발표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 의혹에 관한 감사 중간 결과에 따르면, 2017년 6월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부동산원이 주 1회 실시하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중간 집계값을 만들어 가져오게 했다. 이 조사는 원래는 부동산원 조사원들이 전국의 표본 아파트들을 현장 조사해, 7일 전에 비해 가격이 얼마나 오르거나 내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 실장 요구에 따라, 부동산원은 지난주 조사 시점으로부터 3일만 지난 시점에서 아파트 가격 등락을 ‘중간 조사’ 해야 했고, 이 중간 조사 결과는 청와대와 국토부에 ‘중간치’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원래 하던 조사 결과는 ‘속보치’와 ‘확정치’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청와대와 국토부는 먼저 들어온 ‘중간치’ 아파트 가격 상승률보다 최종 집계된 상승률이 높으면 부동산원에 ‘가격이 올라간 이유를 대라’고 요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동산원 직원들을 압박했다. 부동산원 간부들에게는 ‘통계 조작에 협조하지 않으면 부동산원 조직과 예산을 날려 버리겠다’고 했다. 결국 조사원들은 직접 조사한 아파트 가격 대신 이를 임의로 깎은 가격을 입력했고, 이렇게 집계된 거짓 가격 상승률조차도 너무 높다고 생각되면, 부동산원 본사 직원들이 상승률을 추가로 깎았다.

A씨를 비롯한 부동산원 주택통계부 직원들은 조사원들이 보내오는 조사 결과를 취합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을 산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상승률을 임의로 낮추는 조작도 직접 해야 했다. 조작한 통계는 청와대와 국토부의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에게 그때그때 메일로 보냈다.

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A씨 등이 메일 본문에 자기들이 조작한 통계가 사실이 아니라고 고발하는 내용을 함께 적어 보낸 경우가 다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메일 수신자 가운데에는 통계 조작을 직접 지시하거나 압박한 사람뿐 아니라 다른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도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정책 담당자들에게 실제 시장 상황을 정확히 알게 해주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이 확보한 이런 ‘고발 멘트’들 가운데에는 ‘실제 상황은 우리가 보고하는 통계와는 많이 다르다’는 직설적인 내용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5월에 청와대와 국토부에 메일로 보낸 통계 파일에는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돼 있었지만, 같은 메일의 본문에는 ‘서울 송파구는 잠실 권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높아, 구 전체적으로는 상승률이 플러스(+)가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당시 김수현 靑실장과 김현미 장관 - 2018년 11월 한 회의에 참석한 김수현(오른쪽)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선 청와대, 국토부의 지시로 광범위한 집값 통계 조작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2019년 6월에는 2018년 말부터 하락세를 보였던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부동산원의 조작된 통계를 기준으로 해서도 상승세로 전환됐는데, 당시 국토부는 부동산원에 “이대로 가면 저희 라인 다 죽는다. 한 주만 더 마이너스(-)로 부탁드리면 안 되겠느냐”며 하락세인 것처럼 조작하라고 요구했다. 이때도 부동산원 직원들은 청와대·국토부에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전주에 비해 0.01% 떨어졌다고 조작한 통계를 보내면서도, 메일 본문에는 ‘시장은 이미 플러스로 전환됐다. (민간의) KB부동산 통계로는 2주 전부터 플러스로 전환됐다’고 적었다.

아파트 가격 폭등 상황에서도 부동산원 통계상 가격 상승률이 턱없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자, 여러 시민 단체들이 2018년부터 부동산원 통계 숫자가 왜곡돼 있다고 지적하기 시작했다. 이때도 부동산원 직원들은 메일에 ‘사실은 시민 단체들의 주장이 옳다’고 적어 보냈다고 한다.

감사원은 이런 메일들을 받아본 청와대·국토부의 담당자들이 부동산원 통계가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메일 수신자 가운데 통계 조작을 멈추기 위해 움직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메일로 당국에 고발 멘트를 보냈던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오래전 일이라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동산원 직원들의 고발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미국 고위 당국자가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동맹 관계에는 관심이 없고 김정은과 푸틴에게 호감을 보인다’고 폭로하는 글을 기고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0년 마일스 테일러 전 국토안보부 장관 비서실장은 자신이 그 기고문을 쓴 고위 당국자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