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를 결정하는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하고 있다./국무총리실

2030 엑스포 개최지 결정을 이틀 앞둔 26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막판 유치전을 현지에서 진두지휘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출국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영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파리로 이동해 25일까지 머무르면서 ‘부산 세일즈’를 한 윤석열 대통령과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이다. 한 총리는 현지 시각으로 26일 오후 파리에 기착한 직후부터 휴식 없이 곧바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대표들을 잇따라 만나 부산 지지를 요청한다.

정부는 현지 시각 28일 오후 열리는 BIE 총회에서 개최지 결정 투표가 진행되기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유치 활동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형준 부산시장,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오영주 외교부 2차관도 한 총리와 함께 투입됐다. 민간에서는 한 총리와 함께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필두로 한 기업인들이 가세한다. 한국 민관 차원의 총력전을 벌이는 것이다.

부산시도 28일 BIE 총회가 열리는 파리 근교 이시레몰리노시(市)에 ‘비스트로 부산’ 홍보 부스를 마련해 총회 참석자를 대상으로 막판 홍보에 나서고 있다. 또 파리에 있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도 부산 응원존을 마련해 부산 시민단체, 파리에 있는 교포들의 응원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다.

한 총리는 출국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긴 행진곡 중 마지막 악장만 남기고 있는 심정”이라며 “민관이 흘린 땀은 어느 나라보다 진했다고 생각한다. 막판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초·중반 열세를 뒤집고 투표 최종 결과에서 ‘박빙 승부’를 기대해볼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추격했다고 보고 있다. 공무원·기업인부터 총리, 대통령까지 발로 뛰며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과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과 주요 13개 기업 임원들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구 495바퀴에 해당하는 1989만1579㎞를 이동하면서 각국 정부·정치권 고위 관계자와 외교관, 국제기구 관계자 등 3472명을 만났다. 여기에는 각국 정상이 566명 포함돼 있다. BIE 회원 182국보다 인원이 많은 것은, 한 국가 정상을 여러 차례 찾아가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28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센 강 위에 부산엑스포 홍보선 ’크루즈82’가 에펠탑 앞 강변에 정박해 있다. 8미터 크기의 부산 갈매기 ‘부기’캐릭터가 탑재된 홍보선 ‘크루즈82’는 이날부터 29일 이틀간 파리 센 강에서 운영되며, 선내에는 박람회 주제를 담은 전시‧홍보 공간이 마련돼 있다./뉴스1

최근에는 한국이 엑스포 유치전을 위해 특정 국가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수일 뒤 사우디가 같은 나라에 찾아가 ‘표 단속’을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사우디에서 한국 지지로 돌아선 일본과 같은 사례가 더 나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차 투표에서는 사우디와의 기존 약속을 고려해 사우디에 투표하지만, 2차에선 한국에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물밑으로 전달해오는 나라들도 있다”고 했다.

한국이 엑스포의 성격 자체를 바꿔버리겠다는 메시지를 내세운 것도 회원국들에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엑스포들이 개최국과 주요 참가국이 국력을 과시하는 행사였다면, 한국은 “부산 엑스포를 일회성 행사로 만들지 않고, 전 세계가 모여 기후변화와 불평등, 디지털 격차 등 인류 공통의 난제에 대해 지혜를 나누는 플랫폼이 되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이런 비전이 회원국 다수를 차지하는 중견·약소국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2027 엑스포 유치전에서 미국·스페인·아르헨티나·태국을 물리치고 깜짝 유치에 성공한 유럽의 소국 세르비아가 한국에 귀띔해준 유치 비결도 ‘발로 뛰는 것’이었다. 세르비아 총리 측은 지난 9월 방한해 한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회원국들이 어느 나라에 투표할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동적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각국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진영 논리에 따라 어느 나라가 어디에 투표할지가 뻔했던 냉전 시대와 달리, 최근 국제 행사 유치전은 그야말로 대혼전”이라며 “누구도 결과를 예단할 수 없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