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 일부를 감춰 인건비를 실제보다 적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공공기관들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각 공공기관이 인건비를 얼마나 썼는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주요 평가 항목 가운데 하나고,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각 공공기관 임직원이 받을 수 있는 성과급 액수가 결정된다. 공공기관들이 성과급을 많이 챙기기 위해 평가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조작했다는 조사 결과다.
국민권익위원회는 5일 한국도로공사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예산 600억원가량을 불법 전용(轉用)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승윤 권익위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도로공사가) 용도가 제한된 ‘보상비’와 ‘시설부대비’를 (공공기관 감독 부처인) 기획재정부 등과의 사전 협의나 승인 없이, 토지 보상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인건비로 불법 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권익위가 확인한 불법 전용 금액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시설부대비 450억원, 보상비 149억원 등 약 600억원이다.
시설부대비는 도로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시설 공사를 집행할 때 필요한 각종 부대 비용을 처리하기 위해 책정되는 경비다. 공사 계약을 체결하는 데 들어간 수수료, 측량 수수료, 담당자가 공사 현장을 감독하러 갈 때 들어가는 여비와 체재비, 안전모·안전화 등 안전용품 구입비 등으로 써야 하는 돈이다. 보상비든 시설부대비든 인건비로 쓸 수는 없다. 그러나 도로공사가 인건비 예산에서 지출했어야 할 직원 인건비 일부를, 보상비·시설부대비 예산으로 지출했다는 것이다.
정 부위원장은 “이 같은 행위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소속 임직원들이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한, 사익 도모를 위한 구조화된 부패 관행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들은 매년 총인건비 인상률을 정부가 정하는 기준보다 낮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매년 정부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감점을 받고, 이로 인해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 그만큼 임직원이 성과급을 덜 받게 되거나 아예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인건비 일부를 감춰 총인건비를 실제보다 작아보이게 한 것은 임직원 성과급을 더 챙기기 위한 부패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도로공사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에 제출한 교통사고 통계 자료도 조작됐다고 지적했다. 정 부위원장은 “공사의 전산 시스템에서 일정 기간의 교통사고 통계 자료를 표본 추출해 확인한 결과, 공사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기초 자료가 되는 교통사고 통계를 작성하면서 법령 및 기준에 따라 통계에 포함돼야 할 교통사고 건수를 임의로 제외했다”고 했다.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가 실제보다 적어 보이게 한 자료를 제출하는 방법으로도 경영평가 점수를 올려 받았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도로공사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S’, ‘A’~’E’ 등 6단계 등급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A’등급을 계속 받았다. 지난해에 공기업 가운데 ‘S’를 받은 곳은 없었고, 도로공사를 포함해 5곳만이 ‘A’를 받았다. 이를 통해 도로공사 사장은 매년 8292만~1억1337만원, 직원은 1인당 평균 매년 806만~104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권익위는 다만 도로공사의 총인건비 축소와 교통사고 건수 축소가 누구의 지시로 이뤄진 것인지, 이로 인해 경영평가 결과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등은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확인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 부위원장은 “수사가 필요한 사항은 대검찰청에, 관리·감독이 필요한 사항은 기획재정부에 이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시설부대비와 보상비를 인건비로 전용한 것은 공기업 예산 운용지침에 따라 집행된 것으로 기재부와 협의하거나 기재부로부터 승인받을 사항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도로공사는 “전용된 인건비는 당해연도 총인건비에 포함돼 경영평가에 반영됐다”며, “(이런 행위가)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한 불법 전용이나 사익 도모를 위한 구조화된 부패 관행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교통사고 통계에 관해서는 “조사 권한 등의 부재로 사고 조사가 불가하거나 차량 피해 보상 등의 경미한 사고 등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평가 등급 상향을 위해 실적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감사원도 이날 근로복지공단이 직원들에게 상품권과 간식비 등을 지급해놓고 이를 인건비 계산에서 감췄다는 내용의 근로복지공단 정기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정부 지침과 근로복지공단 자체 규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임직원에게 상품권 등 현금성 물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임금 인상을 해줘서는 안 된다. 특별한 사유 없이 단순 격려 차원에서 상품권을 지급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공단 노조는 2020년 12월 이런 지침과 규정을 어기고 공단 직원들에게 온누리상품권을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코로나 기간에 고생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노사 합의를 근거로 공단 직원 8555명에게 총 8억5550만원이 지급됐다.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근로복지공단은 이 상품권 지급을 포함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직원들에게 제공한 진료비 감면, 야간 간식비 등 70억3198만원을 공단이 지출한 인건비 계산에서 제외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에는 이렇게 사실과 다르게 산출한 인건비 자료를 제출해 평가를 받았다.
감사원은 직원들에게 상품권을 일괄 지급하고 총인건비는 축소 보고하는 행위를 한 담당자에게 주의를 주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요구했다. 감사원은 다만 공단의 총인건비 축소 보고로 인해 공단의 평가 점수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앞으로 노조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여 임금 협상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총인건비 인상률 산정 관련 업무도 철저히 하겠다”고 감사원에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