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825곳이 지난해 진행한 채용을 정부가 전수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454곳(55%)이 공정한 채용을 위한 절차를 867차례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계약직 고위 간부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자기가 계획을 세워놓은 채용에 응시한 끝에 합격해 상근직 고위 간부로 돌아온 ‘셀프 채용’까지 있었다. 이를 포함해 공공기관 임직원 68명이 채용 비리에 연루됐고, 이로 인해 최소 14명이 중간 합격 또는 최종 합격할 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하는 피해를 입었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공직유관단체 채용실태 전수조사 및 사규컨설팅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6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권익위와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은 산하 공공기관 1364곳 가운데 825곳을 선정해 이 기관들이 지난해 실시한 채용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조사했다. 539곳은 최근 3년 내에 채용 관련 조사를 받았으나 채용 비리가 포착되지 않아,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다.

조사 결과, 충남 천안시 산하 천안시민프로축구단(천안시티FC)에서 중대한 채용 비리가 발견됐다. 이 축구단 사무국장이었던 A씨는 지난해 경영기획팀장을 채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인사위원회 개최와 채용 공고 등을 결재권자로서 직접 진행했다. 그래놓고는 이 채용에 응시해 경영기획팀장으로 최종 합격했다. 단장은 A씨가 채용에 유리하게 응할 수 있게 서류심사 평가 기준을 강화해줬다. 경영기획팀장은 사무국장의 부하 직원이지만, 사무국장은 2년 단위 계약직인 반면 팀장은 상근직이었다. A씨는 자기 계약 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상근 직원으로 계속 있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용한 것이었다.

이 구단이 진행한 홍보마케팅팀 차장 채용에선 단장과 오랜 친분 관계가 있는 지인이 응시를 했지만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단장은 채점 위원 3명 가운데 1명이 매긴 점수를 빼고 나머지 2명이 매긴 점수만으로 점수를 다시 계산하게 해 지인을 합격시켰다. 이 지인은 면접전형을 거쳐 최종 합격했다. 천안시는 구단이 부정 채용으로 공공기관운영법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른 공공기관들에서도 갖가지 채용 절차 위반이 적발됐다. 11개 기관은 서류·면접전형 채점을 타당한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했다. 한 연구기관의 채용 부서장은 서류심사를 단독으로 진행하고,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만을 채용한다는 자체 규정까지 무시하고 학사학위가 없는 특정인을 서류전형에서 합격시켜줬다. 한 재단도 자격 미달자 3명에게 면접을 볼 기회를 줬고, 1명을 최종 합격시켰다. 한 공공기관은 채용 부서장이 서류전형 합격자를 아무 근거 없이 임의로 선정했고, 인턴을 계약직으로 전환할 때에도 각 인턴이 근무한 부서장이 전환시킬 대상자를 마음대로 고르게 했다. 어떤 객관적인 기준도 없었다.

6개 기관은 가점 부여 기준을 어기고 특정인에게 임의로 가점을 줬다. 한 의료원은 면접전형에서 70점 이상을 받은 사람에게만 가점을 줄 수 있다는 자체 규정을 어기고, 64.33점, 68.00점 득점자에게 가점을 줬다. 이 2명은 최종 합격했다. 한 공단은 지원자 3명이 입사지원서에 자기가 가점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라고 스스로 표기하고, 그 근거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그대로 가점을 줬다.

6개 기관은 응시자들에게 공고한 선발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임의로 합격자를 정했다. 한 체육회는 면접위원 3명 중 2명으로부터 무조건 탈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은 응시자가 있었으나 이 응시자를 예비 1순위로 선정했고, 이 응시자가 최종 합격했다. 한 연구기관은 면접을 진행해 각 응시자에게 점수를 매겨놓고, 이 점수를 합격자를 결정하는 데 아예 쓰지 않았다. 이 기관 인사위원회는 면접 점수는 무시하고 임의로 채용 후보자를 골라 기관장에게 추천했고, 기관장이 이 후보자들 가운데 최종 면접을 통해 합격자를 골랐다. 한 사회복지 공공기관은 면접전형 고득점자 순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놓고는 이 기준을 스스로 어기고 응시자 2명을 탈락 처리했다.

3개 기관의 채용에선 응시자와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임직원이 채용 심사 위원으로 참여했다. 2개 기관은 자체적으로 세운 채용 계획을 정확히 안내하지 않아, 계획대로 채용이 진행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모 진흥원에서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으로 퇴직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다는 자체 규정이 있었는데도 채용 공고에 이를 알리지 않아, 공무원에서 퇴직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 응시했고 최종 합격했다. 한 공단에서는 채용 공고를 10일 이상 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채용 2건의 공고를 각각 5일, 7일간만 했다. 채용 공고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특정인에게 유리한 방식이었을 수 있다.

권익위는 이런 채용 절차 위반 42건과 관련해 각 기관에 관계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 밖의 채용 절차 위반 823건에 대해서는 단순 업무 부주의로 판단하고 주의 또는 경고 조치했다.

이번에 적발된 채용 비리로 부당하게 불합격당하는 피해를 본 응시자는 7개 공공기관 채용 관련 14명이었다. 권익위는 ‘채용 비리 피해자 구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14명에게 다음 채용 단계에 재응시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최종 면접 단계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응시자는 즉시 채용하고, 필기 전형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응시자는 다음 단계인 면접 전형 기회가 부여된다. 해당 공공기관은 이미 채용을 마쳤더라도 피해자 구제를 위해 관련 채용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 또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이 피해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 경쟁 채용을 실시한다. 반면 부정 합격한 것으로 확정된 합격자는 채용이 취소된다.

권익위는 채용 비리로 인한 피해자는 2019년 55명, 2020년 122명에서 2021년 81명, 지난해 48명, 올해 14명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승윤 권익위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정부의 지속적인 채용 비리 근절을 위한 노력으로 채용 비리 적발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앞으로도 채용 실태 전수 조사를 매년 실시해 채용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