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HAP PHOTO-2092> 감사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상황 방치, 사실 은폐·왜곡"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피격) 사건' 당시 상황을 방치하고, 사건 이후에는 관련 사실을 은폐·왜곡했다는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가 7일 발표됐다. 사진은 피살된 공무원이 타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지난해 9월 열린 추모 노제. 2023.12.7 [연합뉴스 자료사진] utzza@yna.co.kr/2023-12-07 10:49:23/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가 2020년 9월 서해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는데도 이씨를 방치하고, 이씨가 피살돼 소각된 뒤에는 이씨를 근거도 없이 ‘자진 월북자’로 몰아갔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7일 공개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점검 주요 감사결과’ 자료에 따르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해양경찰청, 통일부, 국방부 등 관계 기관은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생존 상태로 북한 당국에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관련 규정과 매뉴얼에 따라 이씨를 구하기 위해 했어야 하는 조치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오전 1시 58분쯤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실종됐고, 37시간여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 실종 지점에서 27㎞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구월봉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1시간여가 지난 오후 4시 43분쯤에는 국군 합동참모본부가 이씨가 발견됐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오후 5시 18분 안보실에 보고했다.

이씨 살아 있는 것 알면서도 방치

그러나 그 뒤에는 관계 기관들이 모두 사태를 방관했다. 안보실은 이 상황이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를 아예 하지 않았고, 우리 국민이 북한에 억류됐을 경우 대응을 주관해야 하는 통일부에 이씨가 북측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안보실의 상황실장 격인 국가위기관리센터장과 1차장, 안보실장 모두 오후 7시 30분 또는 그 이전에 ‘정상 퇴근’을 했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감사원에 “북한이 이씨를 구조하면 ‘상황이 종결됐다’는 보고만 하면 될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의 담당 국장은 이씨가 북측 해역에 있다는 소식을 안보실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을 통해 오후 6시쯤 뒤늦게 전달받았다. 그러나 이 국장은 상황을 통일부 장관은커녕 차관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관계 기관에 연락하지도,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기 위한 절차를 관련 기관들과 협의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 국장도 그러다 오후 10시 15분쯤 퇴근했다.

합참은 안보실에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됐다고 보고한 뒤로 손을 놓았다. ‘통일부가 주관해야 하는 상황이라, 군에서 대응할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주관 부처가 통일부였더라도 관계 기관으로서 합참이 해야 할 일은 있었다. 해군 전력을 북측 해역 가까이로 이동시키고, 북측도 수신하는 해상 통신망인 ‘국제상선공통망’으로 북측에 연락을 해보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합참은 움직이지 않았고, 합참으로부터 ‘주관 부처가 통일부’라는 보고를 받은 국방부도 이씨를 구하기 위해 북한에 전통문을 보내는 등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해경은 21일부터 남측 해역에서 이씨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경 본청과 중부해경청은 22일 오후 6시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안보실로부터 전달받고도 이를 실제 수색을 하고 있는 인천해양경찰서에 알려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천서는 이씨가 처음 실종된 지점을 계속 수색하는 헛수고를 했다.

해군은 거짓말을 했다. 해군은 21일 인근 해역에 있는 전력에 구체적인 수색 작전 지시 없이 막연히 ‘이씨를 찾아보라’고만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놓고 합참에는 여러 해군 전력이 이씨를 수색하고 있다고 허위·과장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이씨가 북측에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뒤에도 해군은 가만히 있었다.

이씨 피살 뒤엔 사실 은폐

북한은 9월 22일 오후 9시 40분쯤 이씨를 총살한 뒤 10시 50분쯤까지 시신을 불태웠다. 안보실과 합참이 북한이 이씨 시신을 태우고 있던 오후 10시~10시 30분에 상황을 알았지만, 이후에 관계 기관들이 한 일은 이씨가 북측에 산 채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었다.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서는 “이씨가 피살·소각된 사실에 대해 ‘보안’을 유지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자 국방부는 합참에 이 사건과 관련해 우리 군이 갖고 있는 비밀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했고, 합참은 군사 정보 관련 전산망 운용 담당자를 새벽 3시 30분에 사무실로 나오게 해, 전산망에 탑재된 군 첩보 보고서 60건을 무단으로 삭제하게 했다. 합참은 이후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생산된 비밀 자료 123건을 전산망에 올려놓지 않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모두 올려놨어야 하는 것들이다.

국방부는 이씨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일종의 ‘연극’도 했다. 23일 오후 1시 30분 기자들에게 이씨가 그저 ‘실종’ 상태인 것처럼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오후 4시 35분에는 북측에 이미 사망한 이씨를 ‘구조’해 달라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냈다.

통일부는 22일 오후 6시에 담당 국장이 국정원으로부터 이씨가 북측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던 것을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통일부는 장관이 23일 새벽 1시 관계 장관 회의에 가서야 사건을 알게 된 것이 통일부가 처음으로 사건을 인지한 시점이라는 내용의 허위 자료를 국회와 언론에 배포했다.

‘월북 몰이’ 위해 정보·수사 보고서 끼워맞춰

23일 오전 10시에 열린 관계 장관 회의 때부터는 이씨에 대한 ‘월북 몰이’가 시작됐다. 안보실과 국방부는 이씨가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정보 기관들이 여기에 맞게 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내게 했다. 합참은 이씨가 실종되기 전 타고 있었던 어업지도선에서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어업지도선에 남은 신발이 이씨 것이라는 증거도 없었는데도, 이씨가 어업지도선에서 홀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가 신발을 벗어두고 바다로 뛰어내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씨가 북측에 붙잡혔을 때 왜 북측으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고, 거듭된 질문에 뒤늦게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도 이씨가 적극적으로 월북하려 한 것처럼 둔갑해 보고서에 들어갔다. 이 보고서는 24일 아침 8시에 다시 열린 관계 장관 회의에 보고됐다.

국정원은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24일 관계 장관 회의에 들어간 국정원장은 합참의 ‘자진 월북’ 보고서를 접하자, 국정원의 별도 분석은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렇다면 그 내용을 조속히 언론에 알려야 한다”고 호응했다. 결국 국방부는 이날 오전 11시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씨의 자진 월북 여부를 수사하는 해경도 결론에 사실관계를 끼워맞췄다.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을 부인하는 정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고, 이씨에게 도박 관련 빚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씨를 도박 중독자로 몰아갔다. 해경은 9월 28일 실제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서가 ‘아직 수사가 진행된 것이 없어 발표할 내용이 없다’며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거절하자, 본청이 나서서 마치 수사를 해서 나온 결과인 것처럼 ‘자진 월북’ 잠정 결론을 내놓기도 했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관계자 20명에 대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서훈 전 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김홍희 전 해경청장 등 기관장 4명을 먼저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하 실무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 별도로 13명에 대해 현직 공무원인 경우엔 징계·주의를 요구하고 퇴직한 경우에는 공직 재취업 시 불이익을 받도록 자료를 남기기로 했다.

이번 감사 보고서는 지난 10월 5일 의결됐으나, 다른 감사 보고서와 달리 원문은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비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