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관리위원회가 2022년 대선 투표소 운영 부실 논란을 계기로 감사원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은폐하는 등 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 직원들은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계기로 지난해 시작된 두 번째 감사 때도 채용 비리 수법이 담긴 파일을 변조하고 문서를 파쇄하면서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 기관’임을 내세우면서 외부 감시를 거의 받지 않은 결과, 간부 자녀 특혜 채용 등의 비리가 벌어지며 속이 곪아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달 2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에 대해 감사원법상 감사 방해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냈다. 감사원은 박 전 총장 등 중앙선관위 관계자들이 2022년 정기 감사를 받으면서 승진 심사 등에서 저지른 기관 차원의 잘못을 숨겼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박 전 총장의 전임자인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 업무용 휴대전화와 노트북 PC를 2022년 퇴직하면서 무단으로 가져간 뒤, 지난해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가 시작되자 기기 안의 데이터를 모두 삭제한 것도 확인했다. 감사원은 김 전 총장의 행위에 관한 자료도 검찰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일단 횡령 혐의를 적용했으나, 김 전 총장이 사실상 자녀 특혜 채용과 관련한 향후 수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증거들을 인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사원은 전날 선관위에 대한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진행한 모든 경력직 채용 291건에서 비리나 규정 위반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세환·박찬진 전 총장과 송봉섭 전 차장의 자녀들도 부정하게 채용됐다. 국민의힘은 1일 “선관위가 오염될 대로 오염됐으니 ‘소쿠리 투표’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라며 “선관위에 대한 외부 감사 의무화와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