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는 16일 의사들이 진료 거부의 주된 명분으로 내세운 ‘모든 전공의에 대한 행정 처분 취소’ 요구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시간을 거슬러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한 총리는 환자 단체 대표들조차 “의사들의 이런 집단행동이 다시는 없도록 원칙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헌법과 법률은 의사와 정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언제나 지켜야지, 지키다 말다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는 앞서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복귀할 경우 어떤 불이익 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과 대한의사협회 등은 17일부터 순차적으로 진료 거부에 돌입하겠다면서, 정부가 지난 2월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내린 업무개시 명령 등을 ‘철회’가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정부는 이미 복귀 전공의들에 대해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임을 명확하게, 여러 번 약속드린 바 있다”며 “정부도 교수님들만큼 전공의들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고,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또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기고, 의료계와 환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생명권은 우리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부에 부여한 권한에 따라,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다른 직업에 없는 혜택을 보장하는 한편, 일부 직업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의사에게 모든 자유가 허용돼야 한다면, 의대 설립이나 의대 정원 조정, 해외 의사 면허 국내 활동 허용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워야 되는 것”이라며 “의업(醫業)의 모든 영역에서 무제한 자유가 허용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 헌법과 법률 체계가 명확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또 “환자 단체 분들은 의료계의 이번 집단 휴진 예고에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그 중 한 어머니는 친부모가 포기한 장애아를 입양해 24년간 인생을 바쳐 키운 분”이라며 “그분은 ‘막내딸이 명이 다해 하늘나라에 가면 몰라도, 의료 공백 때문에 보내는 건 못하겠다’며, ‘다시는 이런 집단행동이 없도록 원칙을 세워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셨다”고 소개했다.
한 총리는 “집단 휴진을 예고한 교수님들과 의협 지도부 여러분께서는 부디 이런 호소에 귀 기울이셨으면 한다”며 “국민과 환자 분들의 엄중한 명령을 거역하지 마시기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한 총리의 모두발언 전문.
한덕수 국무총리 지난 한 주일 국내 90여개 환자 단체가 의료계 집단 휴진 철회를 호소하며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까지 벌이셨습니다. 서울대병원, 정부청사, 국회는 물론 의사 단체 시위 현장까지 찾아다니며 제발 집단 휴진을 멈춰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몸이 아픈 분들이 눈물로 호소하시는데도, 지금 이 시간까지 의료계가 집단 휴진 결정을 바꾸지 않고 계신 데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지난 금요일, 무기한 집단 휴진 결정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연세대 의대와 병원 비대위도 27일부터 집단 휴진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의사협회는 18일부터 전국적인 집단 휴진에 동참하도록 개원의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상처를 남기고, 의료계와 환자들이 수 십년에 걸쳐 쌓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생명권은 우리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입니다.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부에 부여한 권한에 따라, 생명을 다루는 의사 분들에게 다른 직업에 없는 혜택을 보장하는 한편, 일부 직업적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의사뿐 아니라 철도, 수도, 전기, 항공, 운수사업 같은 다른 필수 공익사업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만약 의사에게 모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면, 의대 설립이나 의대 정원 조정, 해외 의사 면허 국내 활동 허용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워야 되는 것으로, 이러한 갈등을 겪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업의 모든 영역에서의 무제한 자유가 허용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우리 헌법과 법률의 체계가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환자 단체 분들은 의료계의 이번 집단 휴진 예고에 절망하고 계십니다. 그중 한 어머니는 이번 일로 난생처음 삭발을 하시고 피켓을 드셨습니다. 친부모가 포기한 장애아를 입양해 24년간 인생을 바쳐 키운 분이셨습니다. 막내딸이 명이 다해 하늘나라에 가면 몰라도, 의료 공백 때문에 보내는 건 못하시겠다며, 다시는 이런 집단행동이 없도록 원칙을 세워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집단 휴진을 예고한 비대위 교수님들과 의협 지도부 여러분께서는 부디 이런 호소에 귀 기울이셨으면 합니다. 국민과 전국 환자 분들의 엄중한 명령을 거역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이미 복귀 전공의들에 대해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임을 명확하게 여러 번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정부는 교수님들만큼 전공의들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고,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그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시간을 거슬러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들라는 말씀은, 몇 번을 고심해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헌법과 법률은 의사와 정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언제나 지켜야지, 지키다 말다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대원칙입니다.
정부는 모든 대화에 열려 있고 항상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식이든 의료계가 원하면 만나고 논의하겠습니다. 부디 집단행동 계획을 접고, 정부와 대화에 나서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 과제들은 의료계의 오랜 요구 사항을 반영해서 추진하는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를 포함해 여러 의대 비대위가 언급한 개혁 조치 대부분은 이미 정부가 받아들여 실행 계획을 세웠거나 실행 중인 것들입니다. 의료계도 하루빨리 정부와 함께 논의 내용을 다듬어 나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의료계가 집단 휴진을 하는 대신, 의료 개혁의 틀 안에 들어와 의료 개혁의 브레인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계십니다. 모든 의사님들이 집단 휴진에 동의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환자 곁을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전국 분만 병·의원 140여곳이 속한 대한분만병의원협회와 전국 130여곳의 아동병원이 소속된 대한아동병원협회에 이어, 대학병원 뇌전증 교수님들과 마취과 의사 선생님들도 ‘아픈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병원에 남겠다는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국민과 환자 분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기억하실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집단 휴진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의료계를 설득하는 한편, 집단 휴진이 발생하더라도 환자분들이 병의원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응급 의료 포털, 지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문 여는 병의원을 적극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원을 지키고 계신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 분들, 군의관과 공보의 분들, 행정직원 분들과 의료기사 분들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분들의 헌신을 정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