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공인노무사·공인회계사·변리사·세무사 등 전문 자격시험에서 일부 과목 시험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사라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자격시험 제도·운영 과정의 공정성 제고’ 방안을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들에 권고했다고 3일 밝혔다. 관계 부처들은 권고를 수용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지금은 국가 전문 자격 176종 가운데 15종에서 공직 경력자에게 1·2차 시험의 전 과목 또는 일부 과목 시험을 면제해주고 있다. 감정평가사·경비지도사·공인노무사·공인회계사·관세사·법무사·변리사·보세사·보험계리사·세무사·소방시설관리사·소방안전관리자·손해사정사·손해평가사·행정사 등이다. 예를 들어, 5급 이상 공무원으로 또는 금융감독원에서 대리급 이상으로 감사 업무 등을 5년 이상 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전 과목이 면제된다. 국세청에서 국세행정 업무를 10년 이상 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세무사 1차 시험 전 과목이 면제되고, 이 가운데 5급 이상 직급으로 있었던 기간이 5년이 넘는 사람은 2차 시험 과목도 일부 면제된다. 일반 수험생보다 전문 자격증을 더 쉽게 딸 수 있는 것이다. 소방공무원으로 일정 기간 근무한 사람은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고 소방안전관리자 3급~특급 자격을 받는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정부가 공직 경력만으로 국가 전문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거나 시험 과목을 면제하는 등 공직 경력자들에게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면서 ‘공정 문화 정착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또 “최근 공직자 면제 과목에서 대규모 과락 사태가 발생하면서, 현행 특례가 청년 수험생들에게 공정한 기회 보장을 저해하고 전문 자격증 취득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권익위가 예로 든 ‘대규모 과락 사태’는 2021년 9월 4일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이다. 이 시험에서는 ‘세법학 1부’ 과목에서 응시자 3962명 가운데 3254명(82.13%)이 과락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아 탈락했다. 그런데 이 과목은 공직 경력자들에게는 면제된 과목이어서, 사실상 공직 경력자들에게만 과락을 면할 수 있는 특혜를 준 것이란 논란이 일었다. 직전년도 시험에선 최종 합격자 711명 가운데 47명(6.61%)만이 공직 경력자였는데, 이 시험에선 최종 합격자 706명 가운데 237명(33.57%)이 공직 경력자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 전문 자격 15종 시험에 있는 공직 경력자 시험 과목 면제 제도를 모두 폐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재부·법무부·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들이 내년 6월까지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기로 했다. 실제 폐지는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들이 통과되는 대로 이뤄진다.
다만 행정부가 아닌 법원·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에게 주어지는 법무사 시험 특례는 폐지되지 않을 수 있다. 권익위는 이 특례를 폐지하는 방안을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두 기관에 대해선 특례 폐지를 ‘정책 제안’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앞서 권익위가 2022년 9월 일반 국민 64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76%가 공직 경력자에 대한 전문 자격시험 특례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공무원 13만75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79%가 전문 자격시험 특례가 전부 또는 일부라도 존치되기를 바란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 김태규 부위원장은 “국가 전문 자격시험에서의 공직 특례 폐지를 통해 청년들이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고 전문가 시장에도 활발히 진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권익위는 앞으로도 청년 세대의 공정 사회 실현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