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관광 사업을 추진했다가 재정을 수십억~수백억원씩 낭비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사업에 참여한 민간 업자가 부당한 특혜를 요구하거나 문서를 위조해 지자체 돈을 빼내는데도 공무원들이 이를 묵인해준 경우도 여러 건 적발됐다. 감사원은 일부 지자체장들이 치적을 쌓기 위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예산 낭비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6일 공개한 ‘지자체 주요 재정 투자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원이 들여다본 사업 17개 가운데 9개(53%)에서 예산 낭비나 횡령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강원 삼척시는 폐광 지역에서 특산물인 포도를 이용한 미용 제품을 팔겠다며 106억원을 들여 ‘뷰티스마켓’이라는 체험 시설을 조성했다. 이 시설을 만들면 1년에 6만여명이 방문하고, 11억여원의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방문객과 매출은 예측치의 2~3%에 불과했다. 수익은커녕 운영비조차 감당하지 못해, 삼척시가 앞으로 계속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이 사업은 처음부터 비용을 100원 들이면 편익이 51원 나올 것으로 예측돼, 하면 안 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강원도와 삼척시, 강원연구원이 짜고 비용·편익 예측치를 바꿔 사업성이 있는 것처럼 조작해 사업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전남 고흥군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실내수영장과 해수탕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전남도는 고흥군이 이 사업을 통해 끌어올 수 있다고 한 관광객 수에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며 투자 계획을 두 차례 반려했으나, 고흥군은 자체 투자 심사에서는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고흥군 돈 125억원으로 사업을 강행했다.
고흥군은 전남도 관광객의 약 4.5%가 고흥으로 오고, 이 가운데 약 6.0%가 해수탕을 이용할 것이라고 추산했었다. 이 추산치는 서로 관련이 없는 통계 2개를 뒤섞어 만든 엉터리 값이었고, 감사원이 다시 계산해보니 100원을 투입하면 88원만 회수되는, 경제성 없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52억원을 투입한 상태에서 2021년 7월 공사가 중단됐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세운상가 건물 사이에 공중 보행교를 설치하는 사업을 했다. 서울시는 공중 보행교를 만들면 매년 연인원 10만5440명이 지나다니면서 상가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실제 보행자는 그 11%인 1만1731명에 불과했다. 서울시 투자심사위원회는 처음부터 서울시의 사업성 예측이 부실하다며 사업을 여러 단계로 나눠서 추진하라고 했으나, 서울시가 이를 무시하고 단 두 차례에 걸쳐 1109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 강화군은 화개산에 모노레일을 조성하고 ‘매출액의 3%’를 받는 조건으로 민간 업자에게 사업권을 줬으나, 민간 업자가 계약 후 강화군이 ‘당기순이익의 3%’만을 받는 조건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은 이렇게 계약 조건을 바꿔도 강화군이 받는 돈은 그대로라고 군의회에 거짓말해 승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충남 예산군은 479억원을 들여 테마파크인 ‘내포보부상촌’을 조성하고, 여기서 나오는 손익을 절반씩 배분하는 조건으로 민간 업자에 운영을 위탁했다. 민간 업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15억9000만원 손실이 발생했다며 그 절반을 예산군에 청구했다. 예산군 공무원들이 확인해보니, 비용 지출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청구 금액을 모두 인정해 7억9000만원을 줬다. 감사원이 조사해 보니, 이 업체는 유령 직원을 고용하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손실을 7억원 넘게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각 지자체에 주의를 주고, 강화군·예산군에 담당 공무원들을 징계하라고 하는 한편, 내포보부상촌 민간 업자 등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