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빠진 아파트’ 사태를 불러온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원들이 LH 출신 전관(前官)이 있는 업체들로부터 금품과 골프 접대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LH 직원들은 관리·감독해야 할 업체 가운데 전관이 있는 업체에 대해선 품질 미흡으로 줘야 할 감점은 주지 않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가점을 주는 등의 특혜를 베풀었다. 전관 업체들은 LH 주최 경진 대회에서 특혜를 받아 수십억 원짜리 일감을 따내기도 했다.

감사원이 8일 공개한 ‘LH 전관 특혜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LH의 수도권 지역 현장 감독이었던 A씨는 2021년 3월 한 명품 매장에서 상품권 230만원어치를 썼다. 감사원이 이 상품권의 최초 구매자를 추적해보니, A씨가 감독을 맡은 현장에 납품하는 업체들이었다. A씨는 전관들과 함께 베트남과 카자흐스탄으로 회사 몰래 골프 여행을 갔다 온 것으로도 확인됐다.

그래픽=이철원

A씨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10차례에 걸쳐 현금 4560만원을 자동 입출금기(ATM)를 통해 자기 계좌에 입금하고, 이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이 자금 출처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자, A씨는 아버지가 보훈수당과 기초연금을 현금으로 출금해 모아 뒀다가 자기에게 줬고, 이를 서랍과 장롱에 보관해오다 입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현장 감독 3명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전관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각각 30여 차례 골프 접대를 받았다가 적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장 관리자 일부만 선별해 조사했는데 나온 결과”라며 “LH 전반적으로 전관 업체와 유착 관계가 퍼져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이런 전관 업체들은 LH가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발주한 설계 용역의 69.2%(1조1645억원), 감리 용역의 90.6%(1조4605억원)를 수주했다. LH 직원들은 전관 업체들이 감점을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질러도 이를 눈감아주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상점이나 포상을 내주면서 전관 업체들이 수주전에서 유리한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국토교통부 사고조사관이 지난해 5월 2일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9일 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 1~2층의 지붕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충북 청주시 공공임대주택 공사에서 설계를 잘못해 공사비를 17억원 넘게 증액시킨 전관 업체는 감점을 받지 않았다. 경기 화성시와 파주시 아파트 공사 감리를 맡은 전관 업체들은 아파트 공사가 끝난 뒤에야 받을 수 있는 평가 항목까지 완공 전에 미리 ‘우수’ 평가를 받아 가점을 받았다.

LH는 자체 규정으로 특정 건축사무소에 아파트 설계 일감을 몰아주지 못하게 돼 있는데, 예외로 LH가 개최하는 주택 설계 경진대회에서 상을 탄 업체에는 추가로 일감을 받을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2018년 대회에선 11개 업체가 응모해 5개 전관 업체만 남자, 4개 업체만 상을 주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 5개 업체에 다 상을 줬다. 5위로 입상한 업체는 이를 통해 33억원짜리 경기 파주시 아파트 설계 일감을 따낼 수 있었다.

천장을 대들보 대신 기둥과 이어진 철근(전단보강근)으로 떠받치는 ‘무량판 구조’ 공법을 적용한 LH 아파트 102곳 가운데 23곳(22.5%)에서 철근이 누락돼 있었던 것도 LH의 관리 소홀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LH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공사비를 절약하겠다며 이 공법을 도입해놓고는, 이 공법상 기둥이 지하 주차장 천장을 버티려면 전단보강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설계 업체들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 결과, 철근을 기둥 위가 아니라 기둥 아래에 넣는 등의 엉터리 설계 도면이 나타났고, 시공사들은 이를 그대로 시공했다.

구조 설계 업무와 구조 설계대로 도면을 그리는 업무를 서로 다른 업체에 맡긴 것도 문제의 원인이었다. 구조 설계를 한 업체가 설계대로 도면까지 그려야 하고, 이를 별도 업체에 하도급하는 것은 LH 규정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LH 아파트 설계를 맡은 업체들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설계 도면 작성 업무를 부당하게 하도급했고, LH 직원들은 감독 소홀로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결과, 구조 설계에는 넣으라고 돼 있는 철근이 별도 업체가 그린 도면에는 빠져버린 경우가 생겼고, 그대로 시공되면서 철근 누락 사태가 벌어졌다.

감사원은 LH에 A씨는 파면하고, 다른 현장 감독 3명은 정직시키라고 요구했고, A씨 등 LH 전·현직 직원 2명과 전관 업체 소속 3명 등 5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