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13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이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2024년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면 정부는 두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또다시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법안들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심의하게 된다”며 야당에 “막대한 국가 재정이 소요되고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지우는 법안들을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회가 국가 경제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특정 정당과 진영의 이해관계만 대변한다는 국민과 기업의 하소연도 날로 커지고 있다”고도 했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국민 1인당 25만원을 주겠다는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공약을 정부가 따르지 않자 민주당이 만든 것으로, 정부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35만원을 유효 기간 4개월짜리 ‘지역 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주도록 강제하는 내용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원 금액(25만~35만원)에 따라 최소 12조8000억원에서 최대 17조9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한 총리는 이 법안에 대해 “정부가 법안 공포 후 3개월 안에 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지원금 지급 대상과 액수, 지급 시기까지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재정 상황과 지급 효과 등을 고려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인데 그런 재량을 박탈하고 입법부가 행정의 세부 영역까지 일일이 강제하며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어서 “전 국민 대상 지원금 지급은 소비 촉진 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과도한 재정 부담과 함께 민생 경제에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는 “지원금 지급에 필요한 13조원 이상의 재원을 조달하라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막대한 나랏빚이 돼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고,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전가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또 “대규모 국채 발행은 물가와 금리를 상승시켜 오히려 민생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시키는 대로 급하게 전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3개월 안에, 지역사랑상품권이라는 단일 수단으로 지원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집행력이 담보되지 않는 법은 국민들의 혼란과 불편만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와 사용자, 사용자단체, 노동조합, 노동쟁의 등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노조법 2조를 개정하는 것이 주 내용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보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하청 기업 소속 근로자가 원청에 단체 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면 불법이었지만,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합법이 된다. 원청에게는 하청 근로자의 유급 노조 활동 등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노란봉투법은 또 노조법 3조를 개정해, 노조 파업으로 기업이 본 손해에 대한 노조와 조합원의 배상 책임을 제한했다. 직접적으로는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방위하기 위해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노조법 2조 개정으로 ‘합법 파업’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만큼 배상 면책 범위도 넓어진다. “사용자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손해배상 등 책임을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돼, 노조가 일단 파업을 해놓고 기업을 압박해 파업으로 인한 배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를 받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 총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이미 정부가 재의 요구를 해 21대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부결·폐기된 법안”이라며, 당시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 “사용자의 범위를 모호하게 확대해 헌법상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노동쟁의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해 노사 간 대화와 타협보다는 실력 행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강화시킬 우려가 컸다”고 했다. “손해배상 원칙에 과도한 예외를 두어 불법 파업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묻지 못하게 함으로써, 산업 현장에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 자명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그럼에도 야당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시킬 내용을 추가해 또다시 법을 통과시켰다”며 “‘근로자가 아닌 자’도 노조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도록 해 노조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커졌고, 손해배상 제한 범위가 더욱 확대돼 불법 파업으로 인한 피해가 사용자와 국민들께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안을 재가하면, 국회는 법안들이 돌아오는 대로 본회의를 열어 법안들을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재의결 시기는 국회의장이 정한다. 법안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부결되면 법안은 폐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1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만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가결돼 법률이 됐다. 14개 법안은 재의결에서 부결되거나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방송 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지난 12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