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대원 특검법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 ‘지역화폐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세 법안은 야당이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가결한 것으로, 해병대원 특검법안은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 및 이와 관련된 대통령실 등의 불법행위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출국 관련 의혹 등 7가지를 특검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법안은 대법원장이 고른 특검 후보자 4명 중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명을 고르고, 윤 대통령은 이 2명 중에서만 1명을 정해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그런데 대법원장이 고른 특검 후보자 4명에 대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게 했다.
김 여사 특검법안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 조작 가담 의혹, ‘명품 가방’ 사건 관련 의혹, 총선 개입 의혹 등 8가지를 특검이 수사하도록 했고, 특검은 대법원장 등 제삼자의 추천 절차 없이 처음부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각각 고른 후보자 2명 중에서 임명되도록 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를 시작하면서 두 특검법안에 대해 “정부는 이미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 위반, 특별검사 제도의 보충성과 예외성 원칙 위반, 인권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재의 요구를 했으며, 재의결 결과 모두 부결돼 폐기됐었다”며 “그럼에도 야당은 위헌성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법안들을 다시금 일방적으로 처리해 정부에 이송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번에 통과된 법안들 또한 특별검사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사실상 박탈해, 헌법에서 정한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특히 해병대원 특검법안에 대해선 “제삼자 추천의 형식적 외관만 갖췄을 뿐,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자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야당이 무한한 ‘비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야당이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이어서 “야당이 추천한 특별검사가 야당이 이미 공수처 등에 고발한 사건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고발인이 스스로 수사 담당자와 수사 대상을 정하는 것은 사법 시스템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특검 수사 대상에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 등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까지 포함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 그 위헌성이 한층 가중됐다”고 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이미 수차례 재의를 요구해 국회 재의결 결과 폐기된 법안들에 대해, 야당이 그때마다 위헌성이 한층 가중된 법안들을 다시 밀어붙이는 의도를 합리적인 국민께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정을 운영할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는 반복된 재의 요구권 행사를 요구하는 위헌적이고 정쟁형의 법안에 대해 어떤 타협도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역화폐법(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은 ‘지역 화폐’(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행정 지원을 의무화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법안과 관련해 한 총리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은 지자체장이 스스로 결정해 집행하는 ‘자치 사무’인데,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지 않고 있는 53개 지자체가 이 법안으로 인해 상품권 발행을 강제 받게 된다”며 “지자체 자치권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했다.
한 총리는 또 “이 법안은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신청하면 (행정안전부가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요구하는) 예산 요구서에 의무적으로 반영토록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상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지역화폐법이 “재정 여력이 충분한 지자체에 더 많은 국가 재원이 투입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전국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동시 발행하게 되면, 대도시 및 도시 중심지 위주로 자금 쏠림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지방 소멸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 역행할 소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 세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안을 재가하면, 정부는 세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다만 윤 대통령의 재가 시점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세 법안에 대해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는 시한은 다음 달 4일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21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만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가결돼 법률이 됐고, 나머지 20개 법안은 재의결에서 부결되거나 이전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