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특송물류센터에서 관계자가 화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지난 5월 해외 직접 구매를 원천 금지하려다 철회한 이후 9월까지 4개월간 해외 직구 제품 272종의 유해성을 확인해 국내 반입을 차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67종(98.2%)이 중국의 직구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이른바 ‘알테쉬’)을 통해 팔리던 제품이었다. 일부 어린이용품에선 기준치의 3000배가 넘는 중금속이 검출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4일 국무조정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직구 전면 금지 방침을 철회하고 ‘유해 물품 개별 차단’으로 바꾼 지난 5월 19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135일간 272종의 국내 반입을 막았다. 267종은 중국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이었고, 5종은 큐텐을 통해 판매되는 제품이었다.

반입 차단이 가장 많이 된 품목은 장신구로, 150종(55.1%)에 달했다. 모두 중금속인 카드뮴이나 납이 안전 기준치를 크게 초과했다. 반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발찌, 머리핀에서 각각 안전 기준치의 최대 945배, 927배, 912배, 873배, 865배, 703배, 413배 넘는 카드뮴이 검출됐고, 귀걸이에선 기준치의 최대 52배에 달하는 납도 나왔다.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은, 문제의 제품들이 카드뮴을 일부 함유한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카드뮴을 수십%씩 넣어 만든, 사실상 ‘카드뮴 합금’ 제품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용 반지와 팔찌에서 검출된 카드뮴은 각각 기준치의 3026배, 3013배였다. 어린이용 티아라 2종에선 각각 기준치의 346배 넘는 카드뮴과 130배 넘는 납이 나왔다.

카드뮴은 1군 발암물질에 해당하고 호흡곤란과 신장 기능 이상, 이타이이타이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납 중독은 소화기 장애, 근육 쇠약·마비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어린이에게 학습장애와 행동장애, 영구적인 지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어린이용 옷, 신발, 가방, 지갑, 문구, 완구, 물놀이용품 43종에선 기준치의 최대 395.9배에 달하는 프탈레이트계 첨가제가 검출됐다.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는 플라스틱을 가공할 때 쓰는 첨가제로, 어린이의 성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액체 괴물’로 불리는 장난감 ‘슬라임’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갔던 유독물질 CMIT·MIT가 나왔다. 이 물질들은 호흡기를 자극하고 폐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완구에서는 아예 나와선 안 된다.

색조화장품에선 기준치의 최대 65배에 달하는 납이 나왔고, 아예 나와선 안 되는 크로뮴(크롬)도 검출됐다. 직류 전원 장치, 플러그, 콘센트 등의 전기 제품은 사용 시 온도가 상승하거나 절연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화재와 감전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택제, 코팅제, 접착제, 방향제, 탈취제 등에서도 테트라클로로에틸렌, 톨루엔, 납 등의 유해 물질이 나왔다.

이 제품들은 이미 직구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상태에서 산업부와 환경부, 관세청, 한국소비자원 등이 제품을 확보해 유해성을 확인한 것이다. 정부는 이 제품들의 유해성을 ‘소비자24(www.consumer.go.kr)’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플랫폼 업체들에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한편 세관에서 국내 반입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유해 제품의 국내 유입을 원천 차단하지 못하고 사후 단속만을 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16일 KC 인증(국내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직구를 원천 금지하려 했다가 여론 반발에 사흘 만에 이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정부는 어린이용 제품과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제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유해성 검사를 하고, 여기서 유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해 국내 반입을 막고 있다. 그러나 같은 제품이 이미 국내로 들어와 유통되고 있는 경우, 이 제품들을 정부가 폐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권성동 국회의원실

권성동 의원은 “해외 직구를 통해 들어온 물품 상당수가 안전 기준을 수백 배 초과하는 유해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앞으로 직구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