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 부모회 회원들이 서울시에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의 탈시설 조례는 지난 6월 폐지됐다. /뉴스1

서울시가 이른바 ‘탈시설’ 정책으로 장애인 거주 시설을 나온 장애인 700명을 조사해보니, 최소 2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가운데는 24시간 돌봄이 제공되는 시설을 나온 뒤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내보내 지역사회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탈시설은 일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한 학대가 벌어지고, 장애인을 시설에 집단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장애인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국내에선 2009년 서울시에서 먼저 추진됐고 2021년 문재인 정부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로드맵’을 채택하면서 본격화했다.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주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은 탈시설을 요구한다. 반면 일부 장애인 가족 단체는 탈시설이 24시간 돌봄의 부담을 장애인 가족들에게 지우는 정책이라며 반대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연고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9년에서 2022년 사이에 장애인 거주 시설을 나와 서울에 정착한 장애인 7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생활 실태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도했다. 그러나 487명(69.6%)만이 조사를 받았고, 213명(30.4%)은 조사에서 제외됐다.

이 가운데 42명(6.9%)은 병원에 입원했거나 장애인 거주 시설에 다시 들어간 경우 등으로, 현재 탈시설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였다. 행방이 묘연해 조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경우도 일부 있었다. 7명(1.0%)은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옮겨가 서울시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런데 24명(3.6%)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한편 140명(20.0%)은 조사에 응하기를 거절하거나 무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487명의 다수는 탈시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400명(88.5%)이 시설을 나오기 잘했다고 평가했고, 시설을 나온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17명(3.8%)에 그쳤다. 시설 퇴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나만의 공간이 있어서’(74.5%), ‘시설에서 정한 일정에 따르거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선택할 수 있어서’(52.3%), ‘가족, 친구, 지인 등을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어서’(27.5%), ‘돈을 벌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어서’(26.3%)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복수 응답). 또 시설을 나오고 나서 건강 상태가 27.1%는 ‘매우 좋아졌다’고 했고, 32.4%는 ‘좋아진 편’이라고 했다. 30.8%는 변화가 없다고 했고, ‘나빠졌다’거나 ‘매우 나빠졌다’는 사람은 9.7%에 그쳤다. 새로운 주거지에 만족한다는 사람도 79.7%에 달했다.

하지만 전체의 30.4%에 달하는 ‘조사 제외’ 장애인 213명의 삶 또는 죽음이 어떠한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사망했다고 확인한 24명은 평균적으로 시설에서 나온 지 약 4년 만에 56세 나이로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이 24명이 각각 무슨 이유로 그렇게 이른 나이에 숨졌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24명 가운데는 2021년 4월 폐쇄된 경기 김포시의 장애인 거주 시설 ‘향유의 집’을 나와 오래지 않아 숨진 장애인 6명이 포함돼 있다. 서울시는 이번 조사에 앞서 지난해 2월, 향유의 집을 나와 서울에 정착한 장애인 55명을 추적 조사했다. 전원이 중증 장애인이었고, 대다수가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다. 하지 척수 마비 장애인이었던 A(68)씨는 2021년 퇴소한 지 한 달 만에 욕창에 걸렸으나 뒤늦게 발견됐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패혈증으로 3개월 만에 숨졌다. 지적 장애가 있는 B(47)씨는 무연고 상태였지만 2021년 시설에서 내보내졌고 같은 해 숨졌다. 지체 장애인 C(51)씨도 2019년 퇴소 후 3년 내에 숨졌다. 다른 3명도 퇴소 후 약 3년 만에 사망했다.

사망자를 제외한 49명 중 4명은 다른 시설로 갔고, 7명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38명은 서울시 지원 주택에서 ‘자립’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 가운데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9명뿐이었다. 다른 9명은 고갯짓이나 ‘네’ ‘아니오’ 정도의 말만 가능했고, 20명은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했다. 서울시의 조사 결과를 입수한 권익위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이 20명 중 16명의 시설 퇴소 동의서가 장애인 본인이 자필 서명을 하거나 도장을 찍은 것으로 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는 주민센터에 인감을 등록하고 인감 증명서를 발급받기까지 한 것으로 돼 있었다.

지난 7월 서울시의 향유의 집 퇴소 장애인 55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입수해 공개한 권익위는 사망한 6명이 시설에 계속 있었다면 24시간 돌봄을 받아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봤다. 권익위 관계자는 “서울시의 탈시설 장애인 전수 조사에서 사망이 확인된 24명 가운데 상당수도 시설 퇴소 후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조기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이 어떻게 숨졌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권익위는 또 “발달장애인의 시설 퇴소 결정이 전문의의 판단·소견 없이 맹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각 발달장애인에게 24시간 돌봄이 필요한지, 자립 생활이 가능한지를 전문의가 판단하는 절차가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의 탈시설 장애인 전수 조사에 응한 487명 중에서도 350명(71.9%)만이 시설 퇴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 조사에 응하기를 ‘거절’하거나 ‘무응답’한 것으로 처리된 140명 가운데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퇴소 과정에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는 조사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보도 자료를 내고 “탈시설해 서울에 정착한 장애인 700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라며 “탈시설 장애인의 퇴소 과정 적정성, 의사소통 정도, 건강 상태, 자립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간의 탈시설 정책을 검증하겠다”고 했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권성동 국회의원실

권성동 의원은 “서울시의 탈시설 장애인 전수 조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시행한 전수 조사로서, 700명 중 24명이 탈시설 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탈시설 정책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권 의원은 이어서 “탈시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낳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키운 정책”이라며 “일부 지자체의 조사로도 장애인 인권 침해 문제가 드러난 만큼, 전국 단위의 전수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