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댐 주변 지역 지원 사업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댐 건설로 피해를 보는 지역을 지원하고자 국가가 주는 지원금 다수가 빼돌려져 다른 용도로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댐 주변 지역 지원 사업’으로 지원금이 나간 57개 시·군 가운데 7개 시·군을 추려 조사한 결과, 지원금 207억원 가운데 42억원(20.3%)이 부당하게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강원 춘천시는 공유재산 취득에만 쓸 수 있는 ‘자산취득비’ 예산 8억5608만원으로 사무용 기기와 전자제품, 트럭, 굴착기 등을 구매하고 이를 민간 마을에 나눠줘, 공유재산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춘천시는 1억7453만원을 들여 건조기와 저온 냉장고를 구매해 이를 각 마을이 공용으로 쓰라고 나눠줬으나, 이 물품들은 특정 주민 사유지에 설치됐고 해당 주민만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물건을 나랏돈으로 사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춘천시는 또 마을 영농 시설을 설치해준다며 1734만원을 집행했는데, 시설은 마을 공유지가 아니라 특정 주민의 아들 소유 토지에 설치됐고 개인 거주 시설로 쓰였다.

충북 제천시는 마을회관이 이미 지어져 있는 한 마을에 2021년 ‘마을회관 부지 매입에 쓰라’며 1억2593만원을 내줬다. 마을회는 이 돈으로 특정인의 땅을 사들이고서 2년 넘게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천시 조례에 따르면 마을 한 곳당 마을회관은 하나만 지을 수 있어서, 이 땅은 애초부터 마을회관 건축에 쓸 수 없는 땅이었다. 제천시가 다른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한 ‘소형 농기계 등 지원 사업’은 보조금 1390만원이 들어갔는데, 이를 통해 농기계를 받아간 85명 가운데 17명은 이 마을 주민이 아니었다.

경북 안동시는 ‘주민 생활 기반 조성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지원금 2540만원을 지출해 세탁기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샀다. 그러고는 이를 지원 대상 마을 주민들에게 개인적으로 쓰라고 나눠줘 버렸다. 가전제품을 받아간 사람 중에는 이 마을에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은 외지인도 있었다. 이 외지인이 받아간 가전제품만 400만원어치에 달했다.

전북 진안군은 한 마을에 농배수로 공사비로 보조금 271만원을 줬다고 회계 서류를 작성했지만, 권익위가 확인해보니 이 돈은 댐 건설 피해와 무관한 다른 마을 주민의 사유지에 잔디를 심는 데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임실군도 회계 서류에는 마을 방송 수신기 설치비로 864만원을 집행했다고 돼 있었지만, 이 돈은 실제로는 마을 몇몇 주민들의 건강검진비를 대납하는 데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안군은 지원금 예산을 군 공무원 해외 연수용 차량 임차료로 부당 전용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 단양군도 댐 피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써야 할 지원금으로 면사무소 등 행정관청의 집기를 샀다. 418만원은 면장실 소파, 762만원은 복사기, 117만원은 탕비실 건조기를 사는 데 썼다.

권익위는 7개 시·군에 조사 결과를 통보해, 자체 감사를 거쳐 사업비 회수 등의 조치를 하라고 했다. 댐 주변 지역 지원 사업 주무 기관인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에도 사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100만원 단위로 나가는 소규모 보조금에 대해 ‘누가 신경 쓰겠느냐. 아무렇게나 대충 써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그런 안일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주려 한 것”이라고 했다. 정승윤 권익위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은 “댐 건설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위해 온전히 쓰여야 할 지원금이 부실하게 집행되는 관행을 바로잡고자 한다”며 “권익위는 앞으로도 각종 공공 재정이 올바른 곳에 제대로 쓰이도록, 취약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