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등 체육회 관계자 8명을 부정 채용과 물품 후원 요구, 후원 물품의 사적 사용, 예산 낭비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한다.

국무조정실 산하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10일 지난달 8일부터 이달 8일까지 체육회를 대상으로 한 점검 결과에서 체육회 관계자들의 비위가 드러났다며, 이 회장 등 8명에 대해 업무방해(부정 채용)와 제삼자 뇌물 공여(물품 후원 요구), 횡령(후원 물품의 사적 사용), 배임(예산 낭비) 등의 혐의로 오는 1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한다고 밝혔다.

또 이 회장의 폭언·욕설 등 부적절한 언행과 업무추진비 부적정 집행 등 체육회 관계자 11명의 규정 위반 사항에 관해서는 체육회 소관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법에 따라 조처하라고 통보하기로 했다.

점검단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22년 국가대표선수촌 직원 채용에서 자녀의 대학 친구인 A씨가 부당하게 채용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채용된 자리는 선수촌 내 훈련 관리 업무를 하는 자리로, 국가대표 경력과 2급 전문 스포츠 지도자 자격이 있어야 했다. A씨는 이런 경력과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선수촌 고위 간부 B씨에게 A씨 이력서를 주고, 선수촌 담당자들에게 A씨가 채용될 수 있게 자격 요건을 낮추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선수촌 담당자들은 ‘A씨가 가려는 직위의 자격 요건을 낮추려면 연봉도 낮추어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이 회장은 “어떤 XX XX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욕설과 폭언을 1시간가량 했고, 채용 담당 부서장을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그 결과 국가대표 경력과 지도자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 채로 채용 공고가 났고, A씨가 채용됐다. 이 과정에서 선수촌 고위 간부 B씨는 면접위원으로 들어가 A씨에게 응시자 중 최고점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점검단은 이 자리 채용 경쟁률이 32대1이었다고 밝혔다. 31명이 자신도 알지 못한 채로 A씨 채용의 ‘들러리’를 선 것이다.

이 회장이 금품을 받고 직위를 판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발견됐다. 이 회장의 고등학교 동문으로 체육회 산하 종목단체 회장인 C씨는 올해 초 이 회장에게 파리 올림픽과 관련해 특정한 직위를 맡고 싶다고 청탁했고, 지난 5월에는 선수 제공용 보양식과 경기복 구입비 등을 대납하겠다고 했다. 이 직후에 C씨는 원하던 직위를 맡았고, 지난 8월 앞서 약속했던 물품 구매 비용으로 약 8000만원을 대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점검단은 선수촌 고위 간부 D씨가 이 회장의 허락을 받고 C씨에게 대납을 요청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점검단은 ‘C씨가 맡은 종목단체 회장 임기가 내년에 끝나는데, 다른 종목단체 회장을 한 번 더 하려면 언론에 노출돼 지명도를 올려야 했다’며 이를 위해 C씨가 금품을 대납하고 파리 올림픽 관련 직위를 맡으려 했다는 체육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마케팅 수익으로 들어온 물품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았다. 점검단은 이 회장이 체육회에 들어온 물품 중 휴대전화 20대를 포함해 6300만원어치가 회장실로 배당되자, 이 가운데 휴대전화 14대 1700만원어치를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지인들에게 나눠준 정황을 확인했다. 점검단은 이 회장이 2021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체육회 다른 부서로 들어온 후원 물품 중 신발·선글라스 3500만원어치를 회장실로 일방적으로 가져왔고, 이 가운데 1600만원어치를 직접 사용하거나 방문객들에게 제공한 정황도 확인했다.

C씨의 금품 대납에 관여한 선수촌 고위 간부 D씨도 후원 물품을 임의로 사용한 혐의를 받았다. D씨는 체육회 후원 물품 관리 부서를 통하지 않고 후원사에 직접 연락해 침구 세트 4705만원어치를 받아 선수촌에 별도로 보관했고, 이를 자의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점검단은 체육회가 2016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9년간 후원과 기부, 수익 사업을 통해 물품 280억원어치를 받았으나, 후원 물품 관리 부서가 다른 부서들에 나눠준 물품이 적정하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고 밝혔다. 후원 물품을 쓰는 부서들도 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점검단은 “체육회의 후원 물품 모집 및 관리 체계가 매우 허술하고 방만하다”고 지적했다.

점검단은 체육회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도록 관련 규정을 2021년 ‘셀프 개정’했고, 당시 문체부가 이를 권한도 없이 승인해준 사실도 확인했다. 그 결과로 수의계약 105건, 179억원어치가 체결됐으나, 점검단은 이런 계약에서 비리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파리 올림픽과 관련해 벌어진 여러 논란도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체육회가 선발한 파리 올림픽 참관단 98명 가운데 5명은 이 회장의 지인으로 체육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인사들이었고, 이들은 참관단 다른 구성원들과 달리, 경기 참관 일정을 빠지고 파리 관광을 다닐 수 있는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의 항공료로 1인당 301만~336만원이 들었는데, 점검단은 “이들이 자비로 부담했어야 하는 항공료를 체육회가 대납했다는 의혹이 있어 확인하고자 했으나, 체육회의 비협조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참관단의 파리 올림픽 경기 입장권을 구매하는 데 1억8700만원이 들었는데, 체육회가 이를 절차를 위반하고 선(先) 구매했고, 이 가운데 3215만원어치는 쓰지 않았는데도 환불받지 않아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이 파리 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관련 회의를 하면서 체육회 담당자에게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행사에 온다면 당신을 인사 조치하겠다”는 위협성 발언을 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 회장이 체육회장 연임 등을 두고 문체부와 갈등을 빚은 상황이었다. 점검단은 체육회가 해단식 장소를 갑자기 바꿔 예산이 낭비된 사실도 확인했다.

이 회장은 이밖에도 2021년 체육회 예산 관련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예산 담당자에게 “너는 문체부 XX야, 체육회 XX야?”라고 욕설을 하는 등 평소에도 상습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점검단은 이 사실을 다수 직원의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은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자, 출석을 피하기 위해 이날 전북 남원시에서 열리는 ‘국립 유소년스포츠콤플렉스 센터 건립’ 업무 협약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 점검단은 이 일정이 당일 오전에 끝났으나 이 회장이 국정감사에 가지 않고 충북 진천군에 있는 국가대표선수촌에 갔고, 인근 식당에서 선수촌 직원들과 오후 6시 10분부터 10시 20분까지 4시간여 동안 폭탄주를 곁들인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정감사는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됐지만, 이 회장은 국회에 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점검단은 “국회에서 (이 회장을 고발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한다면 적극적으로 협력해 후속 조치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점검단은 이번 점검 결과에 대해 “체육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체육회에 대한 비위 첩보를 입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체육회 운영상 비위 혐의에 대한 점검에 착수했던 것”이라며 “체육회 본부와 국가대표선수촌을 현장 점검하고 체육회 임직원 등 관련자 7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