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기흥(69) 대한체육회장 등 체육회 관계자 8명을 부정 채용(업무 방해)과 물품 후원 요구(제삼자 뇌물), 후원 물품 사적 사용(횡령), 예산 낭비(배임) 등의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한다고 10일 밝혔다. 정부 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은 체육회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 결과 이 회장 등의 비위 혐의를 확인해 이같이 조치하고, 이와는 별도로 이 회장의 폭언·욕설 등 부적절한 언행과 업무추진비 부적정 집행 등과 관련해서도 체육회 관계자 11명의 감사·징계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점검단은 체육회의 비위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달 8일부터 한 달간 조사를 진행해 이 회장 등 체육회 관계자들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점검단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22년 자녀의 대학 친구인 A씨가 국가대표선수촌의 훈련 관리 직원으로 부당하게 채용되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자리는 국가대표 경력과 2급 전문스포츠지도자 자격이 있어야 했는데, A씨에게는 이런 경력과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선수촌 간부 B씨에게 A씨 이력서를 주면서 경력·자격 요건을 없애라고 지시했다. 선수촌 담당자들이 이에 반대하자, 이 회장은 “어떤 XX XX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1시간가량 욕설과 폭언을 했고, 채용 담당 부서장은 교체했다. 결국 채용 공고에서 경력·자격 요건이 삭제됐다. B씨는 면접위원으로 들어가 A씨에게 최고점을 줬고, A씨가 채용됐다. 이 자리에 지원한 다른 31명은 탈락했다.

그래픽=김성규

점검단은 이 회장의 고등학교 동문으로 이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체육회 산하 단체 회장 C씨가 올해 초 이 회장에게 파리 올림픽 관련 중요 직위를 맡게 해달라고 청탁했고, 지난 5월 C씨가 체육회 물품 구입비를 대납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해당 직위에 임명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C씨는 실제로 약 8000만원을 대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점검단은 이 회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체육회로 후원 물품이 들어오자 이 가운데 휴대전화 20대 등 6300만원어치를 가져갔고, 이 가운데 1700만원어치를 공식 기록을 남기지 않고 지인들에게 나눠준 정황도 적발했다. 점검단은 이 회장이 2021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체육회에 들어온 후원 물품에서도 신발·선글라스 3500만원어치를 가져가 1600만원어치를 직접 쓰거나 방문객들에게 나눠준 정황도 밝혀냈다.

체육회가 올해 파리 올림픽 참관단으로 선발한 98명 가운데 5명은 체육회와 관계없는 이 회장 지인으로, 이 회장이 추천해 참관단에 포함된 사실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 5명은 다른 참관단원과 달리 경기 참관 일정에 불참하고 파리 관광을 하는 특혜를 받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또 문체부와 갈등을 빚은 상황에서 파리 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하게 되자 체육회 담당자에게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행사에 온다면 당신을 인사 조치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점검단은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달 24일 국회 문체위의 체육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자, 전북 남원시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겠다며 사유서를 내고 불출석했다. 그런데 점검단이 조사해보니, 이 회장은 이 행사가 오전에 끝나자 오후에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으로 이동해 인근 식당에서 선수촌 직원들과 4시간 넘게 폭탄주를 곁들인 식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체위는 이 회장이 국정감사에 불출석하자 11일 체육회에 대한 현안 질의를 하기로 하고 이 회장을 다시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지난 8일 문체위에 ‘11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세계올림픽도시연합(WUOC) 스포츠 서밋에 참석하고,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 국제 스포츠 기구 관계자들을 면담하겠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냈고, 10일 출국했다. 이 회장은 국회 출석 회피용 출국을 지원했다는 오해를 살 것을 우려한 체육회 사무처가 ‘출장 예산 지원이 어렵다’는 뜻을 밝히자, 1000만원 넘는 사비를 들여 출장을 간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는 12일 전체회의에서 이 회장의 3선 도전을 승인할지를 결론 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