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에 설치한 온실가스 저감 설비의 효과를 측정한다며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하게 했던 규제가 사라진다. ‘야영 텐트는 천막으로만 만들 수 있다’ ‘가정용 소형 저울을 팔려면 관청 승인을 받아야 한다’와 같이 정부 입장에서는 사소하지만 기업과 국민들을 불편하게 했던 규제들도 사라진다.
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좁쌀 규제”라고 이름붙이고,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 현안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좁쌀 규제 13건을 폐지하는 계획을 담은 ‘기업 현장 규제 해소 방안’을 처리했다.
현행 환경부 규제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에 설치한 온실가스 저감 설비가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매년 저감 설비의 10%에 대해 효율을 측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장 일부의 가동을 멈춰야 했다.
정부는 이 규제를 고쳐, 저감 설비의 10%에 대한 측정은 설비 도입 2년째까지만 하고, 이후부터는 5%씩만 측정하기로 했다. 또 비슷한 설비가 통상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양을 그대로 인정해, 측정을 아예 생략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기로 했다.
전기차 등에 쓰인 배터리에는 리튬, 코발트, 니켈 등 고가의 희소 금속이 들어 있는데, 국내에서는 폐배터리를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순간 ‘폐기물’로 취급돼 폐기물 규제를 받았다. 정부는 앞으로는 이런 가루에 대해 일정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는 폐기물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원료’로 취급해 희소 금속을 추출해 쓸 수 있게 하기로 했다.
해외의 화학물질 제조업체가 국내에 화학물질을 수출하려면, 국내에 대리인을 두고 국내에 들이는 화학물질을 관청에 등록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대리인이 바뀌면 기존의 화학물질 등록을 전부 취소하고, 새 대리인 명의로 처음부터 다시 등록해야 했다. 정부는 이 규제가 해외 기업은 물론 국내 생산을 위해 화학물질을 들여와야 하는 국내 기업들에도 피해를 준다고 보고, 관련 법을 개정해 이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법상 ‘야영시설’의 주재료를 ‘천막’으로 한정한다는 규제도 사라진다. 목재, 플라스틱 등 다른 소재를 활용한 야영시설도 쓰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레저 산업의 발달을 막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식재료 양을 잴 때 쓰이는 가정용 소형 저울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현재는 단 1kg만 측정할 수 있는 소형 저울을 제조해 판매하려 할 때조차도 관청의 형식승인을 받아야 했다. 주요 국가들이 가정용 저울이나 측정 최대 용량 3kg 이하의 소형 저울에 대해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비하면 과도한 규제였다. 정부는 측정 최대 용량 3kg 이하 가정용 저울에 대해선 형식승인을 면제하기로 했고, 연간 29만대가량 팔리는 가정용 저울의 약 73%가 규제 면제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른바 ‘BB탄총’이라고 불리는 에어소프트건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일부 완화된다. 한국은 에어소프트건의 탄속에 대한 규제가 다른 주요국보다 극히 엄격해, 위력이 약간만 있어도 ‘모의 총포’로 취급됐다. 한국은 0.2줄(J)만 넘어도 모의 총포로 분류되는데, 이 기준은 일본(0.989J)보다 약 5배, 독일(7.5J)보다 37.5배 엄격한 기준이었다. 정부는 서바이벌 게임장 사업자가 게임장 내에 두고 쓰는 에어소프트건의 경우에는 모의 총포로 취급하지 않고, 탄속 규제도 일본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소상공인이 소유한 차량과 렌터카에 대한 광고 부착 규제도 풀린다. 지금까지는 자동차에는 자기 업체에 대한 광고만 붙일 수 있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영세 상인과 렌터카 사업자가 소유한 차량에 다른 업체 광고를 붙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앞으로 자동차를 광고판처럼 사용할 수 있게 전면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도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기업 현장의 규제 개선 의견을 경청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규제 혁신 과제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개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총리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끊임없는 규제 혁신으로 민간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모든 부처는 국민 한 분 한 분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