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의 예산안 심사 막바지에 ‘소(小)소위원회’(소소위)라는 초법적 기구를 만들어 비공개로 예산을 주고받는 관행에 대해 감사원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감사원이 국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처음으로, 행정부 소속인 감사원이 나서야 할 정도로 입법부의 예산안 처리 과정이 왜곡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26일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소소위에 대해 “의사결정이 불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어 제3의 기관이나 일반 국민이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소소위에서는 “사업의 타당성보다 특정 이해관계”를 우선시해 예산안이 짜일 우려가 있다며, 실제로 의원들이 소소위를 통해 예산안에 끼워넣은 ‘쪽지 예산’ 상당수가 보조금법 등 국가 재정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편성된 ‘불법 예산’은 2021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20개 사업, 2520억원어치에 달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로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예산을 타내려면, 해당 예산으로 하려는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정부 ‘보조금관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를 통과한 예산을 정부가 예산안에 넣어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상임위원회별 예비 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확정한다. 각 단계의 회의 내용은 모두 공개된다.
그런데 여야는 예산소위에서는 형식적인 심사만 하고, 여야 이견이 있는 민감한 예산에 대해선 예산소위보다 더 적은 인원이 참여하는 소소위로 넘겨 ‘밀실 심사’를 하는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 소소위에서는 예산 항목별로 수억~수조원의 금액을 더하거나 빼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소소위 자체가 법적 근거 없는 비공식 기구라 속기록도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소소위에 들어가는 예결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외에는 누구도 어떤 예산이 왜 들어가거나 빠졌는지를 알 수 없는 구조다.
감사원이 이 소소위를 통해 예산안에 들어간 예산들을 확인해보니, 문화·체육·관광 분야에서만 최소 20개 사업 예산이 법령상 예산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예산이었다. ‘숙원 사업’을 중앙정부 돈으로 해결하려 한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의 합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부는 지방분권을 위해 2010년부터 부가가치세 세입의 일부를 지자체에 떼어주고 있다. 첫해에는 5%만 줬지만, 그 비율을 해마다 높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104조원을 걷어 25.3%인 26조3000억원을 지자체에 줬다. 그 대신에 정부는 ‘문화시설 확충 및 운영’ ‘문화·관광 자원 개발’ ‘체육 진흥 시설 지원’ 등 292가지 사업은 지자체가 알아서 하도록 했다. 재원을 넘겨줬으니 특정 분야 사업에 한해선 정부에 손을 벌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자체와 의원들은 새로운 재정 제도에도 아랑곳없이 정부에 예산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강원도는 민주당 송기헌 의원 지역구인 원주시에 2000억원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사업을 추진했고, 정부가 ‘문화 시설 확충은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원칙대로 예산 편성을 거부하자 기재부와 국회를 방문해 지속적으로 예산을 요구했다. 결국 기재부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올해 예산안에 1000억원을 반영해줬다. 송 의원은 예산 확보 성과를 홍보했다. 감사원은 울산시도 3600억원을 들여 오페라하우스를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가 국비 지원을 거절하자 시 예산으로만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지역 간 형평성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지난해 각각 지역구인 경기 평택시와 충남 아산시에 체육 시설을 설치하겠다며 정부에 일부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기재부는 두 사업이 정부 지원 대상 사업이 아니라고 반대했고, 아산시마저도 ‘정부로부터 해당 사업 예산을 따내면 시 예산으로 나머지를 채워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두 사업 예산은 소소위를 통해 예산안에 들어갔고, 의원들은 ‘예산 확보 성과’를 홍보했다.
아산시와 평택시는 두 사업 예산이 편성됐다는 사실을 의원실이 내건 현수막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억지로 사업을 맡게 된 아산시는 사업 부지와 자체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 사업 포기를 검토하고 있고, 평택시도 기본적인 사업 계획조차 준비하지 못해 올해 사업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천안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배드민턴장 조성 사업은 지자체가 아니라 ‘동호회’가 의원에게 민원을 넣어 예산이 생긴 사례다. 지역 배드민턴 동호인들은 천안시 서북구에 대규모 배드민턴장을 지어 달라고 민원해 왔으나, 천안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지역 배드민턴 협회장이 의원에게 민원을 넣었고, 기재부가 지원 대상 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쪽지 예산의 형태로 막판에 예산안에 들어갔다. 천안시는 올해 초 문체부로부터 통보를 받고 뒤늦게 예산 편성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 증액에 대한 동의권을 갖고 있는 기재부는 이런 예산 요구들에 대해 처음에는 법령 위반을 이유로 편성에 반대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된 국회 민원 사업은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힘들다”며 결국 동의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법령에 맞지 않는 국회 증액 요구 사업이 소수만 참석하는 비공식 협의체(소소위)에서 검토돼 국가 예산에 반영되지 않도록, 정부의 증액 동의에 관한 절차를 마련하라”며 소소위의 불법 예산 요구를 거절하라고 요구했다. 또 “증액 동의 결정 관련 근거 자료를 보존·관리하는 등 증액 동의 절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요구하라”며 소소위 심의 과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행정부 소속인 기재부에 대해선 시정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실제 소소위 관행을 밀어붙이고 있는 국회에 대해선 권한이 없어, 이번 감사 결과가 실효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