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의회 이해충돌 방지 제도 운영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20곳을 골라 조사해본 결과, 지방의원의 60% 이상이 이해충돌방지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나 지방 공공기관이 지방의원 본인이나 가족이 소유한 업체와 불법으로 수의계약을 한 경우도 1300건 넘게 발견됐다.

27일 권익위에 따르면, 권익위는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 많을 것으로 의심되는 20개 지방의회를 추려, 민선 8기 지방의회가 출범한 2022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2년 1개월간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시·도의회 중에선 대전시의회, 충남·충북·전북·제주·경남·경북도의회 등 7곳, 시·군·구의회 중에선 서울 구로·송파구와 대구 중구, 울산 남구의회, 경기 과천·의왕시와 충북 충주시, 전북 익산시, 경남 창원시, 경북 영주시의회, 강원 양구·인제군의회, 충남 부여군의회 등 13곳이 조사 대상이 됐다.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르면, 지방의원은 임기 개시 전 3년 동안 민간 부문에서 무슨 업무 활동을 했는지를 적어 지방의회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권익위가 확인해 보니, 20개 의회 지방의원 518명 중 308명(59.5%)이 자기가 운영했던 영리업체를 적어 내지 않거나, 아예 아무 활동도 적어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의원들이 어느 업체가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는 업체인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보니, 지자체가 이런 업체가 지방의원이나 그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인지 모르고 해당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발견됐다. 지방의회와 지자체, 지방 공공기관이 지방의원 본인이나 가족 소유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는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으로 금지돼 있다.

권익위는 20개 지자체의 지방의회나 지방 공공기관이 지방의원 본인이나 가족 소유 업체와 수의계약을 한 경우가 1391건에 달하고, 계약 규모는 총 31억원인 것을 확인했다. 권익위 고위 관계자는 “지자체가 의원 업체인지 모르고 수의계약을 한 경우도 있지만, 명확하게 알면서 한 경우도 많다”며 “지방의원들과 지자체 관계자들이 좁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니 어느 업체가 누구의 어느 관계인지를 대체로 다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북 영주시는 한 시의원 배우자가 지분을 33.3% 가진 건설업체와 수의계약을 194건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 총 규모는 11억5000만원에 달했다. 소방 관련 업체를 가진 한 경남도의원은 의원 취임 전 대표이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으나 지분 36%를 계속 갖고 있었고, 경남도는 이 업체와 수의계약을 30건, 5580만원어치 체결했다.

지방의원들이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대상에 대한 안건 심사는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경우도 적발됐다. 한 지방의원은 상임위원장이 되기 직전까지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민간 재단에 대한 사유재산 사용료 감면 동의안을 심사했고, 다른 의원은 자기가 의원이 되기 직전까지 회장직을 맡았던 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 안건을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처리했다.

권익위는 지방의원이 속한 의회 상임위원회가 ‘의정활동’ 명목으로 해당 의원 소유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식당에 식사비를 지출해준 경우도 176건 적발했다. 전북 익산시의회 한 의원은 자기 식당에서 소속 상임위 간담회만 12차례 열었고, 시의회 의장과 부의장, 국장 등도 이 의원 소유 식당에서 간담회를 30차례 열어 음식을 팔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가 운영하는 식당, 자녀 소유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어 지방의회가 세금으로 식사비를 내게 한 지방의원들도 있었다.

지방의회 소속 관용차를 사적으로 쓴 지방의원들도 무더기로 적발됐다. 권익위는 조사 대상 20개 의회 중 11개 의회에서 관용차가 사적으로 이용된 정황을 발견했다. 한 지방의회 관용차는 2022년 11월에 인천국제공항, 한 달 뒤 김포국제공항, 지난 5월과 6월 인천공항까지 운행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명목은 ‘의장 의전 수행’이었으나 모두 공휴일이었고 해당 날짜에 의원들이 공무 수행을 했다는 근거 자료는 없었다. 다른 의회의 관용차는 공휴일에 운행한 거리만 980㎞에 달했고 대부분의 목적지가 인천공항이었는데, 해당 의회가 인천공항에서 행사를 했다는 증빙 자료는 없었다. 권익위는 의원들이 휴가철에 공항으로 이동하는 데 관용차를 쓴 것으로 의심했다. 또 다른 의회의 관용차는 의원들이 경조사를 다니거나, 해당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출판 기념회에 다녀오는 데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는 이번 점검을 통해 적발된 지방의원들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를 해당 지방의회에 통보해, 추가 조사를 거쳐 자체적으로 징계와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익위에는 공직자를 직접 징계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번처럼 지방의원 다수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온 경우에 지방의회가 (징계·과태료 처분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된다”며 “제도를 개선할 수 있을지 연구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