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 유철환 위원장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지방의회 국외 출장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243개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난 3년간 다녀온 해외 출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915건 가운데 405건(44.2%)에서 지방의원 등이 항공권을 위조해 항공료보다 많은 예산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고 16일 밝혔다. 권익위는 이 기간 해외 출장이 있었던 233개 지방의회 전부에서 비용 허위 청구 등의 문제가 적발됐다고 했다.

권익위는 “그간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에 관해 외유 논란 등 여러 지적이 있었음에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됐다”며, 17개 시·도 의회와 226개 기초자치단체 의회가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2년 5개월간 주관한 해외 출장을 전수 조사했다.

243개 지방의회 가운데 233개(95.9%)에서 이 기간 한 차례 이상의 지방의원 해외 출장이 있었다. 이 915건 출장으로 인해 지출된 금액은 355억원에 달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해외 출장을 가면서 지방의회 의원이 동행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해외 출장은 1400건, 지출은 400억원이었다.

항공권 관련 문서를 위조해 항공료를 부풀려 예산을 타내는 수법을 쓴 것이 915건 출장 중 405건에서 적발됐다. 충청남도의회는 2022년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 출장을 가면서 1인당 338만원인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예약해놓고, 관련 문서를 포토샵 등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으로 변조해 338만원짜리 이코노미석 항공권을 예약한 것처럼 꾸민 뒤 이 문서로 항공료를 지원받았다. 충남도의회는 이후 비즈니스석 항공권 예약을 취소하고, 1인당 164만원인 진짜 이코노미석 항공권을 발권했다. 이렇게 해서 1인당 174만원씩 10명이 총 1740만원의 차액을 챙겼다. 충북 단양군의회 지난해 오스트리아와 독일, 체코 출장을 가면서 여행사에 요청해 1인당 201만원짜리인 항공권을 265만원짜리인 것처럼 문서를 변조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1인당 64만원씩을 챙겼다.

해외 출장 예산으로 관광지 입장료와 가이드비 등을 지출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회는 2022년 일본을 다녀오면서 관광지 입장료로 90만원, 가이드비로 160만원을 의회 예산에서 지출했다. 구의원들이 찾아간 곳은 도쿄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온천,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 등 관광지였다. 다른 지방의회도 지난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출장을 가면서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등을 관람하는 데 300만원을 썼다.

강원 춘천시의회는 지난해 영국과 프랑스 출장을 다녀오면서 손흥민 선수가 있는 토트넘FC 경기장, 영화관 등 관광성 장소 5곳을 방문했고, 방문비와 통역비로 1곳당 80만원씩 총 400만원을 지출했다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해외 출장 915건 중 94건(10.3%)이 싱가포르 방문이었으며, 싱가포르 유명 관광지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방문이 74회 있었다고 확인했다. 한 지방의회는 4박 6일 일정으로 호주를 방문했는데, 일정 전체가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관광지 방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술과 안주, 숙취 해소제, 영양제, 피로 회복제 등 사적용품을 예산으로 구입한 경우도 178건(19.5%) 적발됐다. 서울 관악구의회는 올해 미국 출장을 가면서 피로 회복제 등을 사는 데 106만원을 썼고, 칫솔과 깻잎 통조림 등에 249만원을 썼다. 전남도의회도 올해 베트남 출장을 가서 술과 컵라면, 육포 등을 사는 데 공금 76만원을 썼다. 화투패와 트럼프 카드를 사는 데에도 공금이 쓰였다.

권익위는 지방의원들이 해외 출장에 의회 직원들을 너무 많이 동행시키고, 이들의 출장비를 대납해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 조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117건(13.0%) 출장에서 이런 출장비 대납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 지방의회는 지난해 영국과 아일랜드 출장을 가면서, 규정상 나오는 여비 이상으로 발생한 여행 경비 1950만원을 의원 10명이 사적으로 부담하기로 하고, 출장에 동행한 직원 4명 치에 해당하는 346만원을 대납했다.

권익위는 이렇게 외유성이거나 비용 처리가 불법적인 해외 출장이 자주 일어나는 데 대해 “해외 출장을 심사하는 기구인 공무국외출장심사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심사위는 일정의 외유성 등을 지적하면서도 출장 자체는 승인해주는 행태를 보였고, 특히 지방의원이 심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의원들이 동료 의원과의 관계와 향후 자기가 해외 출장을 가게 될 일을 고려해 공정하게 심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장을 가는 의원이 ‘셀프 심사’를 한 경우도 79건(8.63%)에 달했다. 대구시의회는 올해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가는 의원 2명이 심사위에 위원으로 참여해 ‘셀프 심사’를 하고 출장 승인을 의결했다.

권익위는 문서 위·변조 등 범죄 행위가 확인된 사례에 대해서는 수사 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징계와 환수,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와 지방의회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익위 유철환 위원장은 “이번 실태 점검은 지방의회의 청렴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부패 취약 분야인 국외 출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점검 결과 확인된 위반 사례를 교육·홍보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