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3일 “우리 경제 여건이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이럴 때 건설적인 재정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덕수 “전체 예산 75% 내년 상반기 집행”
한 대행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경제 6단체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정부는 국정을 이른 시일 내에 안정시키고 대외 신인도에 지장이 없도록 장관 회의를 거의 매일 열어 노력하고 있지만, 기업인들이 충분히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 조성에는 아직도 매우 미흡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대행은 “대내·외적으로 리스크가 아주 많은 상황에서 기업들에 이런 어려움을 갖게 해 드린 데 대해, 지금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로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한 대행은 그러면서 내년 예산의 상반기 조기 집행을 통한 내수 부양을 강조했다. 한 대행은 “최근 확정된 내년도 예산을 최대한 빨리 배정하고 있고, 내년 1월 1일부터 즉각 시행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에 전체 예산의 75%를 신속히 집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행은 더 나아가 “건설적인 재정의 역할을 결코 마다하지 않겠다”며 “그 수단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대행은 또 “저희(정부)는 모든 국정의 기본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정책 결정이 돼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며 “현 대행 체제는 헌법과 법률을 충실히 지켜서 우리나라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강한 나라로 (국제사회에) 다시 각인되고, 정책 결정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되도록, 정책 간 일관성과 정합성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 대행은 이어서 “지난 70여년간 우리나라 발전의 선두에는 기업들이 있었다”며 “아무쪼록 정부와 실시간으로 소통해가면서 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회장님들께서 노력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겠다”고 했다.
◇손경식 “전략 산업 보조금, 근로시간 규제 완화 검토해달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멀리 내다보고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글로벌 경쟁 하에서 우리 기업들이 다른 국가 기업들보다 불리한 환경에서 경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그러면서 “반도체, 미래차, 이차전지 같은 국가 전략 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근로시간 규제 완화 같은 대책들도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주기 바란다”했다.
손 회장은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국회에서 통과시켰으나 한 대행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돼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우려됐던 법안”이라며 “정부가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했다. “상법 개정이나 법정 정년 연장 같은, 기업 경영 활동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법안 논의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손 회장은 “또한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소상공인 같은 어려운 국민의 형편을 보듬어줄 수 있는 법안 논의에도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이 민생 대책 마련도 당부드린다”고 했다.
◇최태원 “내수 진작, 미래 인프라 만들어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리세션(경기후퇴)이 오지 않도록 리세션 어태킹(선제적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내수를 진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경기가 너무 침체되지 않도록 막아내야 한다. 기업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야겠다”고 했다. 또 “미래를 위한 기반을 더 만들 필요성이 있다”며 “AI(인공지능)에 관련된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 회의 내부 준비가 필요하고, 한일관계에서도 새로운 진전을 만들어내는 것, 내부 경제에 상당히 도움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류진 “소비 부양할 특단 조치 필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정부가 신속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아직도 (한국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고 했다.
류 회장은 또 “재정과 통화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경기가 지나치게 냉각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소비를 부양할 만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류 회장은 “다음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경제 외교에 공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며 “정부와 민간이 갖고 있는 채널들을 최대한 공유해 미국 신정부의 통상 정책에 대응해야 할 때”라고도 강조했다.
류 회장은 이어서 “성장 동력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첨단 산업의 경쟁력 회복이 급선무”라며 “올해 일몰되는 국가 전략 기술에 대한 R&D(연구·개발) 세제 혜택 연장과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국 수준의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류 회장은 또 “국가 전력망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첨단 제조업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김기문 “발표한 경제 정책 예정대로 추진해달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한 대행에게 “지난주 국회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셨는데, 기업인들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요즘 수출 기업들을 만나면 정치 불안으로 국가 신인도와 위상이 추락해, 수출 시장에서 ‘코리아 프리미엄’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바뀌는 게 아닌가 우려한다”며 “정부는 차질 없는 예산 집행과 함께, 기존에 발표한 경제 정책은 예정대로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회장은 또 “매출 부진이나 연체율 급등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은행들이 고금리 이자 장사 등 잘못된 관행을 반복하지 않도록 금융 당국의 세심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진식 “매일 비상 경제 대책 회의 해야”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제일 중요한 것은 환율과 외환 보유고 관리”라며 “난국을 타개할 수 있도록 과거 우방국들과의 통화 스와프도 챙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회장은 “외교·통상 분야에서 국가 비상 대책 회의 같은 것을 만들어서 대외 신인도를 제고하고, 국민들에게 안심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회장은 “한 대행이 직접 주재해서 매일 비상 경제 대책 회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해서, 부처별로 중구난방식으로 정책을 발표하기보다는 일관되고 통일되게 대외 메시지를 내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