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이 27일 가결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해온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김건희 특검법 공포 등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떠안게 됐다. 자기들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또 탄핵소추에 나서겠다는 민주당과, 민주당 겁박에 흔들리지 말라는 국민의힘 압박을 동시에 받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아낀 관료인 최 권한대행의 선택이 정국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 권한대행은 우선 국회가 지난 26일 선출한 정계선·마은혁·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도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즉각 임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헌법기관 임명권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권한이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선고된 뒤 임명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학계 다수설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 없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선례가 없다’며 맞선 한 총리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잖다.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생길 경우, 여야 양측에서 “최 권한대행이 윤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았다”거나 “윤 대통령 탄핵을 막았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기자들에게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많은 분이 말씀하고 계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국회가 지난 17일 정부로 이송한 내란·김건희 일반 특검법을 공포할지,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지도 최 권한대행이 내달 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앞서 세 차례 국회를 통과했던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최 권한대행 등이 참여한 국무회의에서는 “위헌·위법성이 적잖다”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었다. 네 번째로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넘어온 이번 김건희 특검법과 내란 특검법에도 과거 법안 못지않은 위헌성이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여부도 조만간 결정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최 권한대행 관계도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최 권한대행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기재부 경제정책국장·1차관 등을 거친 엘리트 경제 관료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시절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검찰에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이끌었던 사람이 윤 대통령이었다.
최 권한대행은 문재인 정부 들어 야인 생활을 하다가 윤 대통령이 당선된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 1분과 간사로 발탁됐다. 한 여권 관계자는 “검찰 수사 때 그를 눈여겨본 후배 검사들이 윤 대통령에게 그를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후 최 권한대행은 윤 정부 초대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맡았고, 지난해 12월 경제부총리에 임명됐다. 윤 대통령은 ‘최상목 경제수석’이 생일을 맞자 시내 식당을 찾아 밥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실 출신 인사는 “평생 경제 정책만 다뤄온 최 권한대행이 고도의 정치적 결정을 강요받는 처지가 됐다”며 “자기를 알아보고 발탁해준 윤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쥐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을 것”이라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그에 앞서 최 대행은 국정 운영 방향을 묻는 기자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오늘이 며칠이지? 날짜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고만 했다. 한 고위 관료는 “특검법 공포냐 거부권(재의 요구권) 행사냐 같은 정치적 난제들은 부총리가 직접 떠안고 부담을 나누려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야당 요구를 무작정 따를 수도, 위기 상황에서 무작정 직을 던질 수도 없는 딜레마로 (최 권한대행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