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군인들이 위장막에 덮힌 이동형 대북 확성기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군은 북한의 오물 풍선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9일 재개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10일에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이 9일 밤에도 풍선을 살포하긴 했지만, 북한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며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데 따른 부담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해외 순방에 나선 만큼 국내 상황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정부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로 시작된 남북 긴장 국면이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든 분위기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전방 지역에서 재개한 확성기 방송을 2시간 만에 중단한 이유에 대해 “전략적·작전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작전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장비 휴식 시간 등과 여러 상황을 고려해 필요한 때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북한은 9일 밤 4차 풍선 살포를 한 직후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심야 담화를 통해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이 협박성 담화를 내긴 했지만, 우리 대통령 등 주요 인사를 겨냥한 거친 언사와 노골적 위협이 담겨 있던 종전 담화보다는 수위가 다소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당초 분뇨 등을 넣은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낸 것 자체가 무리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담화 수위와 내용상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상황 관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 듯하다”고 했다. 북한군은 이날 전방 지역에 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설치한 동향이 우리 군에 식별됐으나 대남 방송은 송출하지 않았다.

김여정 담화가 나온 시간은 오후 11시 22분으로 북한이 우리 군의 확성기 방송 재개에 반발해 4차 오물 풍선을 띄운 이후다. 합참은 전날 밤사이 북한이 풍선 310개를 띄운 것으로 파악했다. 풍향이 맞지 않아 남한이 아닌 북한 쪽으로 날아간 풍선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선 내용물은 폐지와 비닐 등 쓰레기였고 안전 위해 물질은 없었다고 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 중 2개는 대통령실 인근인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과 전쟁기념관에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기범 전 국정원 차장은 “담화 표현이 예상보다 세지 않고 북한도 상황 악화를 원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오물 풍선을 띄운 이후 김여정이 ‘새로운 대응’을 예고했으나 뾰족한 수단은 마땅치 않을 것 같다. 도발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무인기나 드론을 이용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북한이 오물 풍선을 통해 일종의 생화학전 시뮬레이션을 해본 것일 수 있다”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심리전 대신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국지 도발 또는 서해 북방한계선(NNL)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오는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등 북한이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대규모 군사 도발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내부적으로 ‘새로운 대응’에 대한 구체적 실행 계획을 세우고 김정은 승인을 받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관건은 당장 탈북 민간 단체들의 추가적인 대북 전단 살포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다. 탈북민 단체 일부는 11일 대북 전단 10만여 장을 북쪽으로 올려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단체는 이달 하순에는 쌀을 담은 페트병을 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우리 정부는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공식적으로 자제를 요청할 계획은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남북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입장을 전하며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