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노동신문 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4년 만의 방북을 계기로 양국 간 군사·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조약’ 체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양국이 무기 거래를 넘어 장기 군사 협력의 토대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양국의 공식 발표 전 이례적으로 먼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며칠 안으로 다가왔다”고 확인한 것도 ‘선을 넘지 말라’는 압박 성격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시점은 18~19일쯤으로 예상된다. 푸틴은 김정일 집권 시절인 2000년 7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푸틴은 2019년 김정은의 방러 때는 북한 방문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도 평양행을 택했다. 그만큼 주고받을 게 있다는 의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이번 푸틴 방북은 국제 정세를 감안할 때 24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매우 위험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북러는 지난해 9월 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분야별 협력 성과를 점검하고 추가 교류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국제사회 비난 부담이 적은 경제협력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우려는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다. 북한은 핵 추진 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찰위성, 전투기 등의 지원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북한의 재래식 무기 제공을 중심으로 한 단기 거래에 치중했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무기 체계 공동 개발 등 군사 협력 초밀착에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김성규

러시아 내부에선 옛 소련 시절 북한과 체결한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을 잇는 새로운 차원의 조약이 체결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콘스탄틴 아스몰로프 선임연구원은 11일(현지 시각)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961년 조약을 계승하는 협정이 체결될 수 있다”며 “(조약이) 군사적·정치적 요소를 얼마나 내포하고 있을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1961년 조약은 김일성의 소련 방문 당시 체결된 것으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포함됐다가 소련 해체 이후인 1996년 폐기됐다. 이후 푸틴이 처음 방북한 2000년 새로운 ‘우호·선린·협조 조약’을 체결했으나 여기에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은 빠져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맹 간 공동의 안보 위협을 전제로 한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되살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양국 간 협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푸틴의 선물 보따리가 북한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한국과의 교역 규모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 무기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며 “러시아로서는 그럴듯한 정치적 립서비스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부는 최근 대남 오물 풍선 살포 도발에 이어 ‘새로운 대응’을 예고한 북한이 잠잠한 것도 푸틴 방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김여정이 대남 담화 수위를 갑자기 확 낮추고 상황 관리에 들어간 건 푸틴 방북 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사정 때문으로 보인다”며 “우리와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푸틴을 평양에 부르는 건 푸틴이 원치 않는 그림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