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북한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후 협정서를 들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 합의한 문건에 대해 “양국 관계를 새로운 질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진정 획기적인 문건”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협정은 새로운 다극화 세계의 구축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AP 통신은 냉전 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것으로 보이는 수준의 협정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북 제재 뜯어고쳐야”

이날 북·러 정상은 금수산 영빈관에서 양측 대표단이 배석한 확대 회담을 1시간 30분 이상, 일대일 단독 회담을 약 2시간 동안 진행했다. 확대회담에는 양측에서 외교와 국방 이외에 우주기술 개발과 에너지·경제 분야 등의 고위 관료가 참석했다. 양측의 회담 대표단 구성을 놓고 볼 때 북·러가 조약에 따라 군사 협력을 강화함에 따라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기술 등을 이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과 핵 추진 잠수함 기술 등이다. 북한이 공을 들이고 있는 군사 정찰위성 발사 기술 협력도 거론된다.

푸틴 대통령은 또 이날 “서방이 정치, 경제 패권 유지를 목적으로 늘려온 수단인 제재에 맞설 것”이라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대북 제재 감시 메커니즘인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반대하면서 임무를 종료시킨 러시아가 앞으로도 노골적으로 제재 무력화에 나설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이는 한국 및 일본, 그리고 북한에 적대적인 병력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군사 훈련의 규모와 강도를 크게 높임으로써 지역 내 군사 기반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대립적 정책”이라며 “동북아 역내 전체의 안보를 위협할 뿐 아니라 평화와 안정성을 약화시킨다”고 고 비판했다. 다만 “러시아는 한반도 무력 충돌 재발 위협을 제거하고 장기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북러 회담은 모스크바?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하기 전 모두발언에서 “다음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회담을 마친 뒤에도 김정은에게 “모스크바에 답방하기를 기다리겠다”고 재차 말했다.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러시아에 초청한 것이다. 북·러가 교차 방문을 통한 정상 간 핫라인 정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초청을 수락했는지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모스크바 답방에 나선다면 푸틴과 김정은의 네 번째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두 정상은 2019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고,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러시아 극동 지역만 두 차례 찾았던 김정은은 아직 크렘린궁이 있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없다.

주로 열차로 장거리를 이동한 북한 선대 지도자들처럼 김정은도 2019년과 지난해 모두 방탄 소재 전용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는 2019년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에도 기차를 타고 갔다. 영국 BBC 방송은 “김정은이 모스크바 초청을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 지도자들이 내부 반란이나 암살 등을 우려해 국외 여행을 거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中, 북러 회담은 “정상적인 필요”

미국과 일본은 우려를 드러냈다. 18일 미국 백악관은 “우리는 어떤 나라도 푸틴의 침략 전쟁을 돕는 플랫폼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제공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잔인하게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같은 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우리는 이란과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하는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반면 두 나라의 교류는 ‘정상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19일 중국 외교부는 “조러(러북)는 우호적 이웃으로 교류·협력과 관계 발전을 위한 정상적 필요가 있고, 관련 고위급 왕래는 두 주권 국가의 양자 일정”이라고 했다. 다만 북러 밀착에 대한 ‘견제구’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관심을 끈 18일 한중 외교안보대화에서 나온 ‘북러 교류가 역내 평화·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언급은 이날 발표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