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20일 북·러 간 군사동맹이나 다름없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체결을 계기로 정부가 러시아의 추가 오판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 때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러는 한편으로 한·러 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염두에 두고 강온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는 외교적 묘미도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가) 이런 움직임을 계속하게 되면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 협력은 한·미의 더 강한 밀착을 초래하고, 이는 러시아 안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군사동맹으로 한국을 사실상 ‘적성국’으로 간주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경제 교류를 축소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 제재를 받는 만큼 경제적 타격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러 교역 규모는 연간 약 150억달러로, 북·러 교역 규모(2021년 기준 4만달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픽=김성규

강경 대응을 지속하는 경우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이번 러·북 조약 체결을 계기로 경제·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바로 적성국으로 돌리기도 어렵다”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러시아와의 대화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인사는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 등으로 상대적으로 한반도 상황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기 때문에 북·러 군사동맹 위협이 별것 아닌 것처럼 톤다운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이런 미국과 똑같이 보조를 맞추는 건 우리 안보 상황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북·러 조약 체결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바로 우리 입장을 확실히 밝히는 논평부터 냈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6시쯤에서야 북·러 군사 밀착을 규탄하는 ‘정부 성명’을 냈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이렇다 할 정부 입장도,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대응책도 정부 내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정부가 제대로 준비된 답안을 마련해두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정부가 일단 대체 앞으로 우리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러시아의 설명부터 들어봐야 한다”면서도 “이번 조약에 따른 북·러 군사기술 이전 증거가 잡히게 되면 우리 외교안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경우 (지금까지 자제해온)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자제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었으니 대러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북·러 간 군사 협력, 연합 훈련, 무기 체계 교환 등이 진전되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제공 카드로 러시아 측에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북·러 조약에 대응하는 최선의 대응책은 (다음 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미·일이 공동 방위 성명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