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5월 28일에 이어 6월 9일 대남(對南)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탈북민 단체들이 구호물자를 넣은 대북(對北) 전단을 북한으로 날려 보낸 데 대한 분풀이였다. 정부는 같은 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런 와중에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겠다고 주장하는 혁명 세력 ‘새조선(구 자유조선)’이 점점 더 과감한 행동에 나서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려 훼손하는 영상까지 공개했다. 《월간조선》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도 이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북한이 대북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새조선과 같은 내부의 반(反)체제 세력 확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새조선’의 실체가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새조선 홈페이지 캡처

北 혁명 세력 ‘새조선’

북한 내부에서 반체제 활동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나선 단체는 ‘새조선’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이 지구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를 영원히 지워버리고, 새 국호 ‘조선’의 건국을 자신 있게 준비하는 평양의 비밀 자유민주 정부”라고 밝혔다. 또 “조선을 이끌 새 정부의 첫 정당은 자유민주당”이라며 “김정은 정권은 우리 당을 축소 왜곡하고 조작 말살하기 위해 비열한 방법으로 소탕을 운운하지만 이것은 기겁한 자의 허풍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수령 독재에 불법적으로 빼앗긴 나라와 인민을 해방하고자 평양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비밀전사들로 조직된 결사 항전의 저항 정부이다.”

‘새조선’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소개 문구다. 새조선 접속 링크에 “자유조선아시아의 새 이름”이라고 적혀 있는 점, 자유조선 활동 사진을 게재한 점, 스스로 “우리는 2019년 3월 1일 설립된 자유조선의 설립 이념과 사상을 따른다”고 밝힌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자유조선’을 계승한 조직인 것으로 보인다. 자유조선은 ‘천리마민방위’에서 이름을 바꾼 조직이다. 천리마민방위는 2019년 스페인 주재(駐在)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의 배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조선은 지난 5월 18일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평양에서 보내온 영상’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들은 “묘 비석보다 많아진 김가(金家) 흔적들을 이제부터 우리가 파괴한다”며 남성으로 추정되는 모자이크 처리된 인물이 붉은 글씨가 쓰인 회색 비석에 검은색 액체를 뿌리고 달아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새조선의 대청소는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평양에서 ‘비밀 자유민주 정부’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조선(북한) 독재 정권의 실상과 인권 실태를 대외에 알려 독재체제의 종식과 함께 북조선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지고 인민들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조선 인민들에게 새 세대를 위한 독재체제 붕괴 및 자유민주주의 국가 설립의 필요성을 알려 제2의 ‘아랍의 봄’이 북조선 땅에서 촉발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새조선의 암호화된 이메일 주소 및 메신저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새조선 측은 해당 메시지를 읽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정부와 관련 부처는 ‘주시’

정부와 관계 부처에서도 ‘새조선’을 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5월 31일 “북한 내부에서 민주주의 사상을 추구하는 반체제 세력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 북한이 내부의 반체제 조직들을 정리(숙청)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듯하다”며 “미국 내 반북 성향 단체인 새조선이 북한 내부 혁명 조직과 연계해 평양에 있는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등 테러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북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비석은 신격화된 것인데 이에 대한 테러를 가했다는 게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관련 정부 기관 내부에선 “북한 체제 전복에 대한 열망이 점차 싹트고 있다는 신호다” “북한 내 반체제 단체들의 세력 확장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새조선과 연계된 북한 내부 반체제 인사는 행동대원이나 말단이 아니라, 간부급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영상 속 비석에 대해선 “북한 내부에서도 충성 경쟁이 심해서 김정일이 지나가다 잠깐 앉았던 자리,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을 봤던 자리에도 전부 비석을 세운다”며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다. 영상 속 비석보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선 김씨 일가 얼굴이 실린 《로동신문》을 깔고 앉아도 수용소에 가는데 비석을 테러한다는 건 정말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이고, 이는 곧 김씨 일가를 테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국가정보원에 영상 속 비석이 위치한 장소 및 비석의 내용, 그리고 새조선이 북한 내 유의미한 움직임에 나설 세력으로 보이는지 등을 물었다. 국정원은 기자의 문의에 “해당 사이트에 대해 알고 있으나 운영주체 조직 등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된 바 없다”고 답했다.

북한 고위 외교관을 지내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태 전 의원은 “저도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영상을 보았는데 확인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2014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A씨에게도 해당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비석 속 내용이나 위치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동영상이라 신뢰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후원 목적일 수 있어”… 회의적인 시각도

다만 아직은 ‘새조선’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전략연) 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5월 31일 통화에서 “(영상의) 신뢰성을 누가 담보할 수 있겠느냐”며 “제3국에서 (영상을) 만들어서 마치 북한에서 한 것처럼 만든 영상도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영상이 과연 북한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를 누가 컨펌(사실 확인)해주느냐가 문제죠. 제가 NGO(비정부기구) 단체들과 통화를 해봤는데,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펀드레이징(fundraising·모금)하려는 의도를 가진 곳도 있어서 (진위 파악이)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사진=조선DB

― 과거에 그랬던 사례가 있나요.

“그럼요. 미국 쪽과 접촉해서 후원을 받는 경우가 있었고요. 그런 걸 뭐라 할 순 없지만 이런 활동을 정말 평양에서 하는 건지 외부에서 하는 건지는 모르죠.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처럼 북한 외부에서 하는 활동은 의미의 한계가 있죠.”

남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전략연 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탈북민 관련 정보를 압니다. (중국) 연변이나 단둥에서 그런 걸(영상 속 행동을) 했으면 이해가 되는데, 이걸 과연 북한에서 한다면 누가 그걸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게 관건이에요. 저도 (영상을) 돌려보고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도 한 번 (진위 조사를) 타진해봤는데, 심증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그 영상이 과연 함흥에서 만들어졌거나, 원산에서 만들어졌다면 누가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 현재 북한의 반체제 세력이 조직화할 가능성이 있나요.

“그건 쉽지 않아요. 국정원 연구원장을 4년 동안 하면서 그런 정보들을 많이 다뤄봤는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었죠.”

“반체제 조직 나올 때 됐다”

이처럼 영상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전문가는 또 있었다. 북한군 민병대 부소대장을 지내다 1979년 탈북해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5월 31일 통화에서 “비석의 글자를 확실하게 볼 수 있어야 100% 북한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영상 속 비석은 글자가 또렷하게 안 나왔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그냥 불그스레한 (글자가 적힌 비석) 데다가 (먹물을) 뿌리는데, 왜 그 글자를 똑바로 안 찍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글자가 또렷하게 나오게 촬영해도 되는데, 그러면 ‘위대한 수령 혁명사’와 같은 게(글귀가 적혀) 있었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유의미한 반체제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선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그의 얘기다.

“지난번 교사가 반체제 조직을 만들었잖아요. 교사를 중심으로 그런 걸 보면 북한도 이제 유사한 조직들이 등장할 때가 됐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물론 비용적인 면에서 후원을 받는다면 거기(북한 내부)서도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이런 영상을 촬영해서 공개하는 건 어떻게 보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선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대외에 알리는 걸 보면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자신감을 가지니까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지, 허술하고 작은 조직이었으면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지하에서만 움직였을 겁니다.”

다만 김일성 비석에 먹물을 뿌리는 정도의 일탈이 북한에서 마냥 새로운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반체제 활동에 가까운 크고 작은 일들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 외무성에서 18년간 근무하며 고위 외교관을 지내다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동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옛날에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김 전 위원은 “북한 내부에서도 밤에 체제 비판을 하는 낙서를 했다가 보위부가 달라붙고 난리가 난 경우가 몇 번 있었다”며 “비밀리에 반체제 활동을 하는 작은 모임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무력 행동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선 “제 생각에 그건 아직 멀었다”면서도 “일어나면 수습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北, 사상 변화 가장 무서워해…이미 시작됐다”

김동수 전 위원은 “배급을 못 받아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났다가 진압당한 일은 있었는데 이번 사건은 좀 다르다”며 “북한 MZ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들이 사상, 정신적인 표현을 했다는 의미가 있어 북한으로선 심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은 “북한이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고 이를 어기면 공개 총살을 진행했는데도 정치적인 항거를 했다는 건 무서운 일”이라며 “북한 MZ 세대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 지금 20~30대가 되었으니 중대장, 대대장까지도 치고 올라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투원들이라는 거죠.

“지금 전투 단위가 다 젊은 세대들이 하잖아요. 주로 30대라고 하는데. 이게 지금 정치적, 사상적으로 반체제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번에 드러난 게 사상적, 정치적 레지스턴스(resistance·저항)니까 북한 보위부나 당 중앙에선 상당히 심각하게 보는 거죠.”

―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을 일으킨 ‘자유조선’도 그 사례에 포함되나요.

“자유조선 대표와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단체는 청년으로 구성된 ‘자유 우파 단체’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미국 정보당국에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미국에 있는 청년 단체들이 북한 독재체제에 대한 부당함을 참지 못해서 그런 활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정치적인 저항을 한 거니까 더 중요하죠.”

― 자유조선 대표와 연락이 닿을 수 있을까요.

“몰라요. 그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비밀스럽게 활동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 내부에서 반체제 운동이 확대될 수 있을까. 김동수 전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네. 정치, 사상적 반항. (북한 정권은) 이걸 가장 무서워하거든요. 사상 변화인데, 이게 지금 현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다만 아직 혁명 조직까지 구축하는 단계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돋아나고 있으니 그게 제일 두려울 겁니다.”

“대북 전단 먼저 받는 건 ‘총 든’ 10~20대 군인”

한편 대북 전단을 날리는 데 앞장서 온 탈북민 출신 인권 운동가 박상학(56)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6월 8일 통화에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대북 전단을 받아 본 20대 군인들이 총부리를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은 두 종류가 있다”며 “반체제 세력 위에 반체제 ‘전복’ 세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전방에 나와 있는, 손에 직접 총을 들고 있는 젊은 군인들이 돌아서는 게 가장 위협적일 것”이라고 했다.

―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은 무슨 활동을 하나요.

“남한에서 (북한으로) 올라오는 유인물이라든가 전단(을 뿌리는 사람), 그리고 휴민트(내부 협조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반체제 세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스파이(간첩)라고 하죠. 북한에서 반체제 세력이라는 건 군부대, 장성급이나 노동당 간부들과 같은 엘리트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반체제 세력이 있다는 건 (북한)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얘깁니다. 반체제 세력은 옛날 러시아 군사 대학에 유학을 다녀왔거나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습니다. 북한에선 반체제 세력을 ‘공화국체제를 반대하는 원수들’이라고 합니다. 이들 중 30명 가까이 총살당한 일도 있었고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사진=조선DB

― 북한이 대북 전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김정은 체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DMZ(비무장지대) 240km에 나와 있는 10~20대 군인들이거든요. 70만 명이 나와 있어요. DMZ로부터 20km 사이에 군인들이 밀집돼 있는데, 그 사람들이 대북 전단을 가장 먼저 받아 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에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반대로 북한을 향해 돌린다면 김정은 체제 입장에선 그게 가장 무서운 거죠.”

앞서 박 대표는 5월 29일 통화에서 “5월 10일 보낸 대북 전단이 평양 밑 남포특별시라는 곳 (조선로동당) 시당 청사에 떨어져 북한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당은 최고 기관인데 시당 청사 옥상 위에 김정은을 비판하는 전단이 떨어졌으니 난리가 났다”고 설명했다.

김양건의 애원

― 이러한 ‘심리전’이 효과가 있나요.

“북한이 두 손 다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당시 이런 일이 있었어요. 김양건(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살살 빌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어요.”

―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2015년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을 때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대요. 그랬더니 김양건이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김관진 실장 팔을 붙들고 ‘이러시면 되느냐, 왜 회담을 끝내느냐’고 조용히 묻더래요. 그러면서 ‘우리가 잘못했다’ ‘내 얼굴도 좀 봐달라’ ‘우리 체제 잘 알지 않느냐, 내 목 날아가는 거 꼭 봐야 되겠느냐’고 얘기했대요. 이건 처음 이야기하는 거예요.”

― 어디서 들은 얘긴가요.

“그것까지 말하긴 좀 그렇고. 고위 정치인이에요.”

― 회담 관계자인가요.

“북한을 너무 잘 알고 북한에 여러 번 다녀온 5선 국회의원…. 아, 여기까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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