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참석 아래 지난 2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 2일차 회의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이날 중앙통신이 발행한 사진을 보면 김재룡 당 비서가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초상휘장, 빨간부분)를 왼쪽 가슴에 착용하고 토론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 배지는 이번에 처음으로 포착됐다./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의 공식 석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얼굴이 단독으로 새겨진 배지(초상 휘장)가 처음 포착됐다. 30일 북한 노동신문은 전날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2일 차 소식을 전하면서 당·정·군 간부들의 사진을 게재했는데 이들은 김정은 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 사진은 북한의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도 공개됐다.

종전까지 북한 간부들과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함께 들어간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김정은 단독 휘장은 김정일 사후인 2012년 제작됐다는 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를 착용한 모습은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김정은 우상화가 전면적 단계로 진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올해 40세다. 김정일 배지가 1992년 김정일이 50세 때 제작된 것과 비교하면 10년이 빠르다. 김일성 배지의 경우, 김일성이 58세로 집권 25주년을 맞는 1970년 처음 나왔다. 그만큼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가 선대보다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이철원

김정은 단독 배지를 두고 북한 전문가들은 “선대를 계승한 후계자가 아닌 독자적인 김정은 시대로의 전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매체는 올해 김일성 생일을 공식 명칭인 ‘태양절’이 아닌 ‘4·15′ ‘4월 명절’로 표현했다. 북한은 김일성 사망 3년 후인 1997년부터 김일성이 태어난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하고 민족의 최대 명절로 기념해왔다.

김정은은 올해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을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엔 반통일선언을 하면서 선대 유훈인 ‘조국통일’ 노선을 전격 폐기하고 김일성·김정일의 공동 유산의 상징물인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수도 평양 남쪽 관문의 꼴불견”이라며 철거를 지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집권 12년 중 2017년까지 5년은 선대 계승을 강조하던 시기였고 작년 연말과 올해 들어 ‘적대적 두 국가론’과 같은 파격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선대와의 차별화를 본격화했다”고 했다.

이는 28세에 집권한 김정은의 ‘어린 지도자 콤플렉스’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은 충분한 후계자 준비 기간 없이 아버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린 나이에 집권했다”며 “권력 기반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진척시킨 것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자신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만 해도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연출해 통치에 활용했다. 김일성의 격정적인 제스처를 따라 하고 지팡이와 밀짚모자 등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소품도 종종 들고 나왔다. 하지만 정작 김일성과 김정은이 단둘이 찍은 사진은 공개하지 못했다. 김일성이 생전에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인 며느리에게서 태어난 김정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한 북한 전문가는 “출생 배경도 김정은의 콤플렉스를 형성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독재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제도 정비와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당 대회를 비롯한 당 회의체에서 헌법보다 상위 개념인 노동당 규약에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명문화하고 당의 최고 강령으로 명시했다. 김정은 집권 12년 차이자 40세에 열리는 이번 전원회의를 계기로 향후 ‘김정은 주의’를 당 규약에 추가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지난 28일 시작된 전원회의에는 총 5개 안건이 상정됐으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당 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인사·조직 개편 및 당 규약 일부 수정·보충 등 개정 논의, 주요 대내외 정책을 논의·의결하는 기구다.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와 맺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의 후속 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사진을 통해 북한 군부 원로인 리병철(76)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이는 동향이 포착됐다. 리병철은 김정은과 상무위원들이 앉는 주석단 맨 앞줄이 아닌 그 뒷줄에 자리했고, 그 대신 선전·선동 비서를 맡은 리일환이 추가돼 리일환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주석단 맨 앞줄에는 김정은과 조용원 당 조직비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 리일환 비서 등 5명이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