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 축구팀이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17살 미만(U-17) 여자아시안컵경기대회 결승 진출을 기뻐하는 모습. 북한팀은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노동신문 뉴스1

2024 파리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북한 여자 대표팀이 뛰어난 실력과 특유의 정신력으로 전세계 주목을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BBC는 13일(현지시각) ‘여자 축구의 잠자는 거인, 북한의 부상과 몰락’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북한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보다 생활 수준이 크게 뒤떨어져 있음에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여자 축구 국가 중 하나”라며 북한 여자 축구를 조명했다.

북한 여자 축구가 세계 스포츠계에 눈도장을 찍은 건 2007년 열린 여자 축구 월드컵 미국과의 경기에서였다. 당시 미국은 세계랭킹 1위로, 월드컵 우승도 2회나 맛본 강팀이었다. 그런 미국을 상대로 북한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경기를 뛴 미국의 헤더 오라일리는 “2007년 경기는 정말 힘들고, 힘들었다. 그들에게서 공을 뺏는 게 어려웠고, 그들은 빠르게 경기장을 돌아다녔다”며 “무엇보다 북한과의 경기는 자료가 제한적이라 항상 미스터리했다”고 회상했다.

이 대회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한 북한 여자 대표팀은 이후 세계 랭킹 5위에 올랐고, 10년간 아시아 지역 대회에서 3차례 우승한 강팀으로 거듭났다.

BBC는 “북한 여자 축구선수들은 애국심이 강한 데다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 강도 높은 훈련 등이 합쳐져 군인 못지않은 체력을 갖췄다”며 “여자 축구계의 잠자는 거인”이라고 전했다.

북한 여자 축구의 특징은 2009년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 브리짓 바이히의 다큐멘터리 ‘하나, 둘, 셋’에 자세히 소개됐다. 바이히는 5년 동안 북한 여자 축구팀을 추적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바이히에 따르면 북한이 여자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86년이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서 여성 최초로 연설을 맡은 노르웨이의 엘렌 윌레가 여성을 위한 월드컵을 요구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 돌아가 이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했고, 김정일이 이에 관심을 보여 축구단이 만들어졌다는 게 바이히 주장이다. 바이히 “아마도 그(김정일)는 여자 축구가 세계적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로 여겼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일본 여자축구 2024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 경기가 치러진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학생 등이 단체 응원을 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북한 여자 축구팀은 김정일의 후원 아래 성장했다.

바이히는 “선수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여자 축구를 직접 후원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북한은 여자 축구선수 육성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축구 훈련을 하고, 선수 발굴을 위해 전국에 스카우트를 파견하고, 정부 비용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훈련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바이히는 전했다.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에게는 ‘평양’에 거주할 수 있는 보상이 뒤따랐다. 북한 농촌 지역은 식량과 의료, 여러 사회 기반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라, 생활 시설이 잘 갖춰진 평양에서 거주하는 일이 북한 주민들에게 일종의 특권이라고 BBC는 전했다.

바이히는 “선수들은 지도자로부터 평양의 아파트를 선물로 받았고, 부모님을 평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며 “팀에 발탁되면 선수와 가족 모두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지원 아래 큰 북한 여자 대표팀은 북한 내에서도 관심도가 높았다. 여자 축구팀이 1만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모으기조차 어려웠던 2000년대에도 북한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김일성경기장을 관중으로 가득 채웠다.

설사 경기장에 온 관중들 모두 자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북한 여자 축구 선수들은 북한 내 ‘스타’ 대우를 받았다. 팬들이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여자 축구 선수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 정도였다.

북한 여자 대표팀의 원동력으로는 ‘정신력’이 꼽힌다. 한 북한 선수는 “미국인들은 충분한 음식을 먹고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을 누리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키가 크고 힘도 훨씬 세다”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정신력이 워낙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바이히는 전했다.

바이히는 “선수들은 모두 축구를 사랑했지만, 지도자와 국가가 큰 동기였다”며 “그들이 성장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영광이 전부이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 대표팀은 2011년 일부 선수들의 도핑 의혹이 불거지면서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췄다. 2015 월드컵 출전 자격이 박탈됐고, 오랫동안 국제 대회 참가가 어려워지면서 2019 월드컵까지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이후로도 북한의 엄격한 코로나 봉쇄 조치로 한동안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북한 선수들은 작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화려한 복귀전을 치렀다.

비록 지난 2월 3차 예선 2차전에서 일본에 2대1로 패해 2024 파리올림픽 진출에 실패했지만 BBC는 이 팀이 앞으로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