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북한에서 당·정·군 간부, 외교관, 해외 주재원 등은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엘리트 계층이다. 이들이 동요한다는 것은 북한 정권이 가장 깊숙한 곳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엘리트층의 탈북이 이전 김정일 집권 시기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본지가 21일 통일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이 ‘단독 보호’ 대상으로 분류한 엘리트 탈북민은 관련 법령에 따라 집계를 시작한 1997년 7월 이후 현재까지 188명이다. 김정일 사망 시점(2011년 12월)까지 54명,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는 134명이다. ‘국정원 단독 보호’ 탈북민은 북한 이탈 주민 관련법에 따른 ‘국가 안전 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국정원장이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주로 북한 외무성, 군, 정보기관, 체제 보위 기관 출신 엘리트다. 김정일 시대 14년보다 김정은 시대 13년에 엘리트 탈북이 집중돼 있다.

엘리트들의 동요는 전체 탈북민 숫자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김정일 시대 전체 탈북민 2만3027명 중 엘리트 비율은 0.23%인 반면, 김정은 시대 탈북민 1만985명 중 엘리트 비율은 1.22%로 5.3배에 달했다.

본지가 인터뷰한 엘리트 탈북민 6인은 “이미 핵심 계층 구성원들 사이에서 체제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김정은 체제는 미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김씨 왕조를 모두 겪었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인 2014~2020년 탈북했다. 외교관 출신 인사는 “자식만큼은 나와 부모님처럼 살게 하기 싫었다. 아직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리일규 참사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먼저 탈북한 선배 외교관 고영환·태영호의 한국 정착 생활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자유세계를 동경하고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제2, 제3 리일규’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