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의 친러시아군 계정인 ‘파라팍스(Para Pax)’가 지난 18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훈련 모습이라며 공개한 영상. 전투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소총을 든 군인 수십 명이 러시아군 기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텔레그램

우리 정부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화한 이후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활동 중인 북한군 ‘선발대’에 관한 정보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국정원 발표 이후 공개된 정보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측에서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문화·정보정책부 산하 전략소통센터(SPRAVDI)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군 복장을 하고 우크라이나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을 입수했다”며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28초 길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녹색 위장 무늬 전투복을 입은 동양인 수십 명이 줄을 지어 서 있고, 같은 복장의 서양인들로부터 더플백 등에 보급품을 받아가는 모습이 담겼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북한 말씨로 “넘어가지 말거라” “뒤에 바짝 따라붙어라, 어?” “나오라, 야. 나오라는데, 이 뻐러지 같은 놈” 등의 말을 하는 소리도 담겼다.

SPRAVDI는 이 영상이 러시아 연해주 세르기옙스키 훈련장에서 촬영된 것이며 입수된 지 72시간도 안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확정할 수 있는 다른 정보가 함께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텔레그램의 친러시아군 계정인 ‘파라팍스(Para Pax)’도 지난 18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이 훈련 중이라며 영상 2건을 공개했다. 각각 49초, 10초 길이 영상에는 전투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소총을 든 군인 수십 명이 걸어가는 장면이 담겼다. 일부 군인은 한국어로 “같이 가”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영상을 촬영 중인 남성이 러시아어로 “여기 (북한군이) 달리고 서두르고 있다. 이건 시작일 뿐이고,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 영상에 담겼으며, 이 남성의 군복에는 러시아 동부군관구 부대 표지가 붙어 있고 촬영 장소가 세르기옙스키 훈련장인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파라팍스는 19일에는 평양을 출발해 연해주를 지나 시베리아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항공기의 항적(航跡)이 표시된 지도를 공개하고 “(러시아군 수송기) IL-62M이 군인들을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수송하고 있다”고도 했다.

미 CNN방송도 이날 SPRAVDI에서 받은 문서 사본을 공개했다. 문서를 보면, 상단에는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라고 한글과 러시아어로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여름용 모자’ ‘여름용 군복’ 등 군장별로 러시아식·북한식 사이즈 환산표가 있다. “러시아씩(식) 크기”와 미터법으로 환산한 크기가 제시돼 있고, “조선씩(북한식) 크기” 칸은 비어 있다. 이를테면 러시아식 모자 사이즈 54는 모자 둘레 53~54cm이니, 이에 해당하는 북한식 사이즈를 기입해달라는 것이다. 러시아군 보급 담당자가 북한군에 러시아 군복 지급을 위해 답변을 요구한 문서처럼 보인다. 다만 북한에서는 러시아를 ‘로씨야’라고 쓰기 때문에 이 문서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 측이 구글 번역기 등을 써서 문서를 작성했다면 한국식 표현이 쓰일 수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누군가 허위로 문서를 작성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CNN이 공개한 러시아의 한글 설문지 - 러시아군이 파병받은 북한군에 보급품을 지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 사본. CNN은 우크라이나 문화·정보정책부 산하 전략소통센터 문서를 입수했다고 1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RFA는 국정원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 북한군이 집결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지난 18일 공개한 위성사진 2장의 구체적인 장소가 확인됐다고도 보도했다. 미국의 민간 위성 분석가 제이컵 보글은 국정원 공개 위성사진을 지리 정보와 대조해, 두 장소가 각각 러시아군 83독립공수여단과 240훈련전차연대 기지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 있는 북한군의 활동과 관련한 동향도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군 점령지 내 우크라이나 저항 단체인 아테시는 러시아군이 사라토프의 고등포병지휘학교에서 북한군 자주포를 운용하는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지난 17일 텔레그램을 통해 주장했다. RFA는 지난 4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인근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 북한 장교 6명이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우크라이나 기자가 “지난 17일 러시아 점령 지역 마리우폴의 주민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북한 군인들을 직접 봤다고 말했다”고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군 파병을 확인하고,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탄 등이 이어질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굳이 사실 확인을 하는 게 득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