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만찬 행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잔을 부딪치고 있다. 북·러는 당시 군사동맹을 복원하는 조약을 체결했고, 이에 따라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규모 파병을 한 것이 최근 확인됐다.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파병에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도 요동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러시아에 무기·병력을 보내는 ‘베팅’을 통해 상당한 경제·군사적 반대급부를 챙기고, 장기적으로 ‘유사시 러시아의 한반도 개입’을 확약받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보수·진보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하거나 조언한 전문가 4인에게 북한 파병의 의미와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 등을 물었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김정은에겐 트럼프와의 담판이 빈손으로 끝난 ‘하노이 노딜 쇼크’가 엄청났고, 이후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 길을 모색해온 게 북·러 밀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조 전 원장은 20일 본지 통화에서 “북한은 1994년부터 미국과의 핵 협상을 통해 체제 보장을 확답받으려고 했고, 트럼프와의 1차 싱가포르 회담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컸던 게 분명한데 지금은 미국의 대북 목표가 ‘레짐 체인지’에서 변함이 없다고 깨달은 듯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조 전 원장은 “김정은은 지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풀어질 가능성이 전혀 안 보이니 이번 러시아 파병으로 에너지·식량 문제 해결과 첨단 군사기술 획득, 실전 경험 습득 등을 통한 군사동맹 강화 등을 노리고 있다”면서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와의 관계 밀착은 미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본인들의 입지를 높여줄 선택”이라고 했다.

조 전 원장은 “미 대선서 해리스 후보가 당선되면 ‘바이든 행정부 2.0′ 노선으로 갈 테니 북한으로선 별달리 고민할 것 없이 지금 태도 그대로 가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변수가 많아진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임기 4년 내에 성과를 만들기 위해 김정은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김정은도 ‘통미봉남’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우리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파병으로 북한의 젊은 군인들이 ‘바깥세상’에 눈을 뜨게 돼 장기적으로 체제 위협이 될 가능성은 낮게 봤다. 조 전 원장은 “지금 북한 군인들은 전쟁터로 가는 것으로, 거기선 서로 죽고 죽이는 목불인견의 일들이 벌어진다”면서 “일부 탈영병이 생겨난다 한들 그게 북한 체제의 공고함에 구멍을 뚫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했다.

조 전 원장은 파병 보도에 대해 북한이나 러시아가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선 “파병이 사실이라 해도, 기존의 러·우 전쟁이 제3자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확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발표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