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현대빌딩에서 열린 ‘더 좋은 세상으로’ 포럼(마포포럼)에서 ‘어떻게 집권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마포포럼은 김무성 전 의원 등이 주도하는 모임으로 전·현직 의원 6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진 교수는 ‘싸움의 기술, 여당을 이기는 전략’에 대해 강연했다. 진 교수는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은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소통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며, 프레이밍을 짜놓고 대중을 끌어들인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좌냐 우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은 아예 자유주의 방식의 소통을 차단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있다. 이 지점에서 가장 화가 난다”고 했다.

진 교수는 현 집권당은 오랫동안 운동권으로 있으면서 선전 선동의 기술과 프레이밍을 배워온 귀재인데 반해, 야권(野圈)에선 이들을 이길 전략이나 감각이 부재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이 이젠 세 가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개혁’이란 프레임을 만든 여당, 이들의 언어를 예견하고 뒤집어라”

진 교수가 말한 첫번째 기술은 ‘프레이밍’이다. 그는 “여당은 프레이밍의 귀재이고, 이 프레임 안에 들어가면 일단 진다”고 했다. 그 예로 바둑판을 들었다. 바둑판의 천재는 커제도 이세돌도 아닌 바둑판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 교수는 “이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참 잘한다. 기본소득이라는 이슈를 일단 던지고 본다. 전 현실성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되든 안 되든 이재명 지사는 잃을 게없다. 일단 그는 던졌으니, 다른 사람들이 이에 대해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의 주장 틀 안에서 놀게 된다”고 햇다.

진 교수는 “여당이 만든 가장 잘못된 프레이밍”으로 ‘검찰개혁’을 들었다. “검찰개혁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이들은 이를 이상하게 하고 있다. 검찰을 제대로 개혁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챙기는 이상한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면서, 대중에겐 검찰을 ‘사탄’ ‘악마’ ‘기득권’ ‘조폭집단’으로 인식하게 하는 프레임을 깔고 ‘검언유착’ 같은 말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진 교수는 “이 안에 들어가면 일단 진다. 그래서 그 프레임을 뒤집어야 한다”고 했다. 가령 ‘검언유착’의 프레임을 여당이 주장할 때, 야당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은 알고 보면 ‘권언유착’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진 교수는 “저들은 늘 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사법부 개혁, 언론 개혁을 얘기할 것이다. 이 프레임 자체가 어떻게 통하도록 한다. 이걸 항상 예상하고 예견하며 뒤집어야 한다”고 했다.


“여론 세팅에 능한 여당, 초기부터 기민하게 대응하라”

진 교수는 야당이 여당을 이기기 위해 익혀야 할 두번째 싸움의 기술로 ‘넛지’를 들었다. 진 교수는 “저쪽은 불리한 상황이 오면 넛지를 친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했다는 혐의로 재판 받고 있는 댓글공작이 바로 대표적인 ‘넛지’다. 보통 사람들, 정치적 지향이 분명하지 않은 중도층이나 무당층의 사람들은 어떤 댓글이나 여론을 먼저 접하느냐에 따라 선입견이 생기고 이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정하기가 쉽다. 그래서 여당은 시민단체, 댓글부대 등을 통해 움직인다”고 했다.

진 교수는 이들의 전략을 뒤집으려면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이미 ‘넛지’를 통해 여론이 세팅되면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초기에 기동성 있게 빨리 대응해야 되는데, 야당이 이런 감각이 좀 무디다. 그게 아쉽다”고 했다.


“김어준과 유시민의 음모론… 이야기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진 교수는 세 번째 기술로 ‘스토리텔링’을 들었다. 진 교수는 “대중은 개별적인 사건을 넘어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숨은 사건의 구멍을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로 듣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데, 이를 정확히 읽고 이용하는 이들이 바로 김어준과 유시민”이라고 했다. “가령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 김어준씨가 ‘아, 이것 기획이다. 앞으로 또 뭐가 터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리 스토리텔링을 짜놓고 깔아버리는 것이다. 김어준이 대중의 욕구를 음모론으로 채워준 것”이라고도 했다.

진 교수는 대표적인 여권의 스토리텔링으로 불거진 것이 한동훈 검사와 채널A 사건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전형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낸 사건이다. 검언유착이라는 프레이밍과 스토리텔링, 그 주인공을 세워놓고 끌고간 것”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이를 무조건 잘못됐다고 받아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대중을 만족시켜야 하니까. 사실에 입각해서 합리적인 추측을 보여주고, 만약 이것이 잘못된 것이 드러났다면 바로 인정하고, 다시 수정가능한 가설을 보여줘야 한다. 이쪽도 합리적인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신현수 사태를 보자. 다들 궁금해한다. 저분이 사표를 냈으면 냈지, 왜 ‘거취를 일임한다’고 했을까. 이건 대통령이 결단하라는 얘기이고, 대통령이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떤 단위가 지금 국정농단을 하고 있고 대통령은 ‘노’라고 말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지 않냐. 야당이 이걸 거짓말하지 않고 합리적인 추론을 활용해 잘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블랙리스트→체크리스트’, ‘증거인멸→증거보존’, ‘피해자→피해호소인’으로 바꿔부르는 여당의 레토릭을 뒤집어라”

진 교수는 네 번째 기술로 ‘수사학’을 꼽았다. 그는 “가장 훌륭한 예가 예전에 보수정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장인이 좌파라고 공격했을 때, 노 대통령이 ‘그럼 아내를 버리라는 거냐’라고 반응한 것이다. 정말 훌륭한 레토릭이다. 부정적인 레토릭을 긍정의 레토릭으로 바꿔낸 것”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여당은 지금 이걸 만들기 위해 자꾸 억지 연출을 하고 그래서 부작용이 생긴다. 대통령이 몇억이나 들여 꾸민 임대아파트를 방문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거짓말하는 것은 문제지만, 야당은 반대로 이런 ‘감정’,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어떤 수사를 써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진 교수는 “저들의 레토릭은 대단하다. 저들은 ‘블랙리스트’를 ‘체크리스트’, ‘증거인멸’을 ‘증거보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 ‘미사일’을 ‘발사체’라고 바꿔부른다”며 “저들처럼 잘못하면 선전선동이 되지만, 언어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원칙을 가지고 길게 보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정의당 강은미 대표와 만나 손 잡은 것, 잘한 일”

진 교수는 “야당이 제발 앞으로 그놈의 ‘좌파’, ‘빨갱이’, ‘사회주의’ 같은 단어를 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윤희숙 의원이 ‘빨갱이’ 소리 하나도 안 하고 5분 동안 연설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지 않나. 이게 올바른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다. 왜 자꾸 ‘좌파’ ‘빨갱이’ 같은 단어를 써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수신인을 좁게 만드나. 한강에 전선을 쳐야지 왜 낙동강에 치는가”라고 했다.

진 교수는 “야당이 필요하다면 파격적으로 움직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만나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 처리에 협력하겠다고 손 잡은 것을 예를 들며 “잘한 일이다. 이를 통해 오히려 민주당이 고립되지 않았나. 때론 먼저 치고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진 교수는 “제발 중도층이 나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야당이 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의 파급력을 줄이지 않는 법, 지지층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야당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