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의 대표 공약 ‘기본소득’을 놓고 여야 모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이 지사가 기본소득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며 인용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기본소득을 선진국보다는 개발도상국에 더 적합한 모델로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기본소득을 비판하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바네르지 교수와 사기성 포퓰리즘이라는 유승민 의원 모두 경제학자라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라고 했다. 이 지사가 언급한 바네르지 교수는 아내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와 함께 2019년 빈곤 퇴치를 위한 실험과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재명의 공약 '기본소득'을 둘러싼 비판

그러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바네르지 교수는 선진국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 지사와 정반대 입장”이라며 “이것을 뒤집어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꾸며댄다”고 비판했다. 바네르지·뒤플로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선진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건데 보편 기본소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개발도상국은 복잡한 프로그램을 운용할 행정 역량이 부족하고 소득 파악도 어렵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유용할 수 있다”고 썼다. 바네르지 교수는 또 올해 4월 경기도가 주최한 기본소득 박람회 기조연설에선 “기본소득이 사람을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이렇다 할 확실한 증거는 없고 연구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며 “기본이라는 건 그 나라와 맥락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여당 인사들도 기본소득을 비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 지사가 주장한 기본소득은 기본 요건도 갖추지 못했고, 근거로 인용한 학자들의 주장마저도 왜곡됐다”며 “최소한 토론의 기본은 갖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 지사는 정책 비전이 이리저리 바뀌고 근거도 미약하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 지사는 5일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 맞지만, 복지만큼은 규모나 질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며 “복지 후진국에선 복지적 경제 정책인 기본소득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재원 조달과 관련해선 “단기적으로는 예산 절감, 장기적으로는 탄소세·데이터세 등 기본소득목적세를 점진적으로 도입해 나가면 된다”고 했다. 이 지사는 소셜미디어(SNS)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네티즌들 주장에 일일이 댓글을 달고 “이해도가 높으면 오해가 사라진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이해 능력을 더 키워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윤희숙 의원은 “뱉은 말을 수습하려 악수(惡手)를 거듭하고 있다”고 했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기본소득이 아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돈을 나눠주기 바쁘다”고 했다. 반면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이규민 민주당 의원은 “바네르지 교수는 기본소득의 유용성은 기본 전제로 깔고 이야기하고 있다. (선진국에선) 소득 보전만으로 실직(失職)의 대가를 감당할 수 없으니 추가적인 정책을 고민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기본소득위원장인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바네르지 교수 저서에는 기본소득을 지지·우려하는 측면이 모두 있어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기본소득에 대해선 노벨상 수상자들도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석학의 의견을 참고해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정책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