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7일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해외 주요국에서 유사한 입법 사례를 찾지 못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조항을 야당의 반대에도 표결에 부쳐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8일 “쟁점이 되는 조항마다 위헌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과잉 입법 등의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전날 통과된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은 30조 손해배상 부분이다. 민주당은 특칙(30조의 2)을 마련해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언론사에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입법조사처는 최근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해외 주요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은 특정 영역을 규제하는 법률로 명시하기보다 사실상 법원의 판결에 의해 제도화됐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 규정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입법조사처는 “미국은 손해배상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판례마다 다소 상이한 입장”이라고 했고, “영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에 대한 입증이 형사책임의 입증 정도로 엄격하다”고 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형사처벌 조항은 그대로 둔 채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가하는 것은 과잉 규제”라고 했다.

개정안에 포함된 ‘고의·중과실의 추정’(30조의 3) 조항도 논란이다. 입증 책임을 사실상 원고가 아닌 피고(언론사)가 지도록 한다는 점에서 “권력자에 대한 견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조항대로라면 정치인 등 권력자가 자신의 비리에 관한 일련의 보도에 대해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라고 주장하면서 그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떠넘길 수 있다. 실제 문체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가장 강도 높게 주장했던 인사는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직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 5월 회삿돈 555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에 대한 비판 보도가 이어지자 그는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있는 보호 장치”라며 언론중재법 처리를 주장했다.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증 책임의 전환은 형사법에서도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한다”며 “언론사를 옥죄는 규정”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례적으로 손해 배상의 하한선(30조)까지 법으로 규정했다. 손해액 하한선을 해당 언론사 전년도 매출액의 1만분의 1로 하고, 상한선은 1000분의 1로 명시했다. 매출액 산정이 곤란한 경우에는 1억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액 산정을 언론사의 매출액과 연동한 것 역시 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피해자의 손해가 언론사 매출액 상·하한선 범위에 있는지 어떻게 단정하느냐”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언론사 매출액에는 사업 수익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뉴스 매출과 이를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지만, 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입법조사처는 개정안에 포함된 기사 열람차단청구권(17조의2)에 대해서도 “해외의 입법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입법조사처는 “유럽에서는 잊힐 권리를 명문화한 삭제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언론사가 아닌 포털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다. 이 조항이 시행되면 인터넷 신문이나 포털 서비스에서 특정 기사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언론중재법에도 정정 보도, 추후 보도, 반론 보도 청구 등이 가능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은 열람차단청구권을 위해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규정도 별도로 신설했다. 야당에선 “언론에 대한 상시적 감시·감독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정 보도를 원래 보도의 2분의 1 이상 분량·시간으로 하도록 한 조항(15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황근 교수는 “정정 보도를 강화할 필요는 있지만, 일괄적으로 2분의 1 이상을 규정하는 건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