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모 묘소는 청량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청량산은 풍수적으로 안산(案山) 역할을 한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4월 3일 오전 찾아간 경북 봉화군 관창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모 묘소는 묘비가 없어 위치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역 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확인한 묘소는 일반인 눈에도 빼어난 풍수를 가진 곳에 위치한 것으로 보였다. 낙동강이 앞으로 굽어 흐르며 바로 앞에 청량산이 높게 솟아 있고 좌우로 산맥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전형적 배산임수 지형이었다. 이곳에는 이 대표의 부모 묘소뿐만 아니라 증조, 조부모 묘소도 차례로 놓여 있었다. 앞에서 볼 때 우측 상단이 증조부모 묘였고, 좌측이 조부모, 그 아래가 부모 묘소였다.

풍부한 햇빛으로 사과 농사가 유명한 이곳이 전국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지난 3월 12일 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모 묘소가 훼손됐다는 사실을 사진과 함께 알리면서다. 당시 이 대표는 “이곳은 1986년 12월 아버님을 모시고, 2020년 3월 어머니를 합장한 경북의 부모님 묘소”라며 “의견을 들어보니,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 사방 혈 자리에 구멍을 파고 흉물 등을 묻는 의식으로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또는 양밥)라고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묘소 봉분 아래에 주술적 글씨가 쓰인 돌을 묻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대표가 공개한 돌에는 ‘生明○’ 세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그때까지 세 번째 글자는 눈으로는 무슨 글자인지 판별하기 힘들었다. 일각에서는 ‘殺(죽을 살)’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 대표 역시 “저승의 부모님까지 능욕당하시니 죄송할 따름”이라며 “후손들도 모르게 누군가가 무덤 봉분과 사방에 구멍을 내고 이런 글이 쓰인 돌을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적었다. 이로 미뤄 이 대표 역시 누군가 자신을 저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돌을 묻은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글자는 殺 아닌 氣

하지만 지난 3월 30일 경북경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문제의 돌을 감정한 결과 마지막 글씨가 ‘殺’이 아니라 ‘氣(기운 기)’로 드러났다. 일종의 반전인 셈으로, 결국 돌에 새겨진 세 글자는 ‘生明氣(생명기)’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은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 화면분석, 주민과 방문객 탐문수사 등을 통해 묘소 훼손 사건을 수사해 왔다. 최근에는 해당 돌이 이 대표 문중에서 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관계를 다시 파악 중이다.

지난 4월 3일 현장을 동행한 풍수전문가 전용원 한국역학협회 회장(문학박사)은 이번 사건처럼 묘소 주변에 뭔가 글자를 새긴 돌을 갖다 놓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묘에 묻힌 사람의 후손이 잘되라고 축원(祝願)하는 의미에서 길상(吉祥)한 글자나 표시·부적 등을 묘 주변에 묻는 경우가 있다. ‘生明氣’가 적힌 돌은 일종의 부적으로 보인다.” 전 회장은 “종이, 돌에 좋은 글씨를 써서 무덤 주변에 부적처럼 묻어 놓으면 생기를 모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속인들이 많다”면서 “유튜브 등을 보면 부적을 묘소 주변에 묻어 흉지를 길지로 바꿔준다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 회장은 이런 행위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생기를 끌어모아 명당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일부 무속인들이 주장하는데 풍수적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라며 “전형적 ‘혹세무민’”이라고 주장했다. 전 회장은 “풍수를 바꾸는 길은 땅의 위치를 바꾸는 이장(移葬)밖에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 부모 묘소 풍수를 살펴보고 있는 전용원 한국역학협회 회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明’은 이재명의 이름

전 회장은 주술적 방법으로 후손에게 해를 가하기 위한 의식을 행한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에 대해서도 “물론 그것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단 “무덤을 저주하는 방법으로는 무덤 정상에 쇠말뚝을 깊이 박는 방법이 많이 쓰이지만 효과도 없고 남을 저주하면 본인 자신이 화를 입는다”고 했다. 쇠말뚝을 봉분 정상에 깊숙이 박은 다음 남들 모르게 흙으로 덮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유튜브 등을 보면 비슷한 저주 관련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生明氣’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 회장은 “이재명 대표를 적극 지원하고픈 사람이 자신의 염원을 담아서 묻었을 것으로 본다”고 추정했다. “이 대표 항렬은 在(재) 자가 돌림자이다. 즉 李(이)는 성이고 在(재)는 돌림자로 明(명)은 이재명 대표를 나타내는 글자”라며 “明은 이 대표 이름일 것”이라고 했다. 결국 “生明氣는 이재명 대표에게 생기(生氣·좋은 운수)를 모여들게 해달라는 축원”이라는 추측이다.

만일 이것이 축원이라면 효과는 있을까. 전 회장은 “부모 묘소를 명당으로 만들어준다며 여러 주술적 의식을 제안하는 경우가 실제 많고, 이번 경우 같은 의식은 최소 수백만원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모두 사기에 불과하고 효과는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 회장에 따르면, 현재 이재명 대표 조상 묘소는 풍수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전 회장은 “풍수를 공부한 사람이 고민을 많이 하고 자리를 잡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안산(案山·주작)인 청량산은 이 묘지의 관모산(官帽山)인데 안산이 관모산 작용을 하면 후손이 관직에 오른다”고도 했다.

실제 이 대표 부모 묘소는 정확하게 눈 앞의 청량산 최고 봉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전 회장은 “후손이 크게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이곳에 부모를 모신 것으로 보인다”며 “웅장한 청량산의 기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너무 욕심을 낸 것이 아쉽다”는 평가도 했다. “청량산의 정상이 너무 높아 묘지를 압박하고 있고, 뾰족한 바위가 살성(煞星)으로 작용해 후손이 순탄하지 못한 길을 갈 수 있다. 차라리 욕심을 조금 줄여 청량산에서 이어진 용(혈맥)을 향했더라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운이 지금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현재 경찰은 “그 의도가 저주이든 기복이든 무관하게 강경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경찰은 피의자 검거에 성공할 경우 범행 의도나 이 대표의 처벌 의사와 무관하게 엄정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이 이 사건에 적용한 분묘 발굴죄는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다.

애당초 경찰은 이 대표 부모 묘소 봉분 아래 단면 지표면에서 총 3개의 구멍(좌, 우, 뒤)을 확인했다. 당초 훼손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앞쪽 구멍은 가족들이 예배를 위해 십자가를 꽂으며 생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4월 6일 전남 강진군에서 고려청자요를 운영하는 이모(85)씨가 “이재명 대표와 같은 경주이씨 종친 등과 함께 경북 봉화군 이 대표 부모 묘소를 찾아 기 보충 작업을 했다”고 언론에 밝히면서 수사가 급반전되었다. 경주이씨 문중 인사들이 지난해 6월 1일 지방선거 3일 전에 ‘이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와 주자’는 취지로 돌을 묻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씨가 기 보충 작업을 했다고 시인함에 따라 수사반을 강진에 보내 사실 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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