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발굴된 한인 독립운동가 인사등기권(인사기록카드). 성명란에 안중근이라고 적혀 있다.

대만에서 안중근 의사 등 한국 독립운동가 관련 고문서가 발견됐다. 현 중국 공산당이 아닌 옛 중국 국민정부의 총통부 군사위원회가 1940~1950년대 작성한 ‘인사등기권’에 안중근, 안정근, 신익희, 홍진, 지청천, 조소앙 등 6인의 신상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대만 국사관에서 발굴된 것을 국가보훈부가 알아내 17일 국내에 공개했다.

보훈부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인사등기권의 신익희 지사 관련 기록에는 일본 와세다 대학 재학, 임시정부 내무·법무총장 역임, 해방 후 국회의장 역임 등 신상 이력이 자세히 기록됐다.

안중근 의사 동생인 안정근 의사에 대해 중국 국민정부가 작성한 인사등기권. "(특별 기록) 안정근은 한국의 의사(義士)이고 안중근의 동생이며 한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일찍이 임시정부 요직에서 일했다, 안정근은 영미(英美)정부와 직접 연계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 영미정부는 은근히 안정근을 도와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국민당) 중앙정부는 마땅히 안정근을 만나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더불어 임시정부가 안정근의 행동을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국가보훈부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 의사의 경우 지금까지 1940년대 활동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사카드에는 “한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임시정부 요직에서 일했고, 영국과 미국 정부와 직접 연계 가능하며 중앙 차원에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담겼다.

특히 1910년 순국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순국 35년이 지난 1945년 8월 21일 인사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당시 중국 국민정부가 고인의 의거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유묵 전시회 및 정책간담회에서 관람객들이 안 의사의 유묵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신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국민당 정부에서) 주요 한인에 대한 조사 보고를 작성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료”라며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사기록 카드 실물이 소개된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 사료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보훈부는 한국광복군 제1지대 대원 87명의 성명과 성별 등이 상세히 기록된 문서도 이번에 최초로 발굴됐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국민정부에 보낸 ‘한국임시정부양식부안권(韓國臨時政府糧食部案卷)’ 제목의 문서철이다. 1941∼1944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 단체에서 중국 국민정부 행정원에 보낸 양식 공급 요청 문서들이 모여 있다.

이 자료에는 한국광복군 등 임시정부 예하 단체들이 국민정부에 직접 보낸 공문과 단체의 소속 대원 성명·성별·나이·주소·소속 등이 수록됐다.

이 가운데 ‘한국광복군제1지대관병대원권속청구평가화명책(韓國光復軍第1支隊官兵隊員眷屬請購平價花名冊)’ 제목의 문서에서는 이종건, 김정숙 등 광복군 제1지대 요원 87명의 명단이 확인됐다.

보훈부는 “이들 중 현재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지 않은 광복군 독립운동가 40여명이 확인돼 향후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업무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며 “여기에 여성 인명이 많이 발견됐는데, 그동안 입증 자료가 부족했던 해외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굴 포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황선익 국민대학교 교수는 “광복군과 그 가족 명단이 상세히 기재돼 있어 소속 인원에 대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고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료”라며 “기존 문서와 비교해 전후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문건들이 풍부해 당대 독립운동의 현실 파악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가보훈부가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미문화협회 주석인 김첨생 박사가 1943년 12월 7일 장제스(蔣介石) 국민정부 주석에게 발송한 서한을 발굴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한미문화협회 주석인 김첨생 박사가 장제스 주석에게 보낸 서한.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중경 국민정부 주석 각하에게: 카이로회의에서 열린 3국 수뇌부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압박 받고있는 2,300만 한인들로 하여금 해방을 맞게 했습니다. 미국 한미문화협회와 호놀룰루 예수교회 등을 포함한 재미한인들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 및 장위원장(장개석)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더불어 한국임시정부의 군대가 동맹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함께 일본 침략자를 조국에서 몰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임시정부는 마땅히 그 힘을 키워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동맹군의 승리를 미리 축원합니다(이하 생략)."


보훈부는 또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미문화협회 주석인 김첨생 박사가 1943년 12월 7일 장제스(蔣介石) 국민정부 주석에게 발송한 서한도 발굴했다.

김 박사의 서한에는 카이로회담에서 결정된 한국의 자유 독립 보장에 관해 장 주석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한에서 ‘한미문화협회와 호놀룰루 예수교회 등을 포함한 재미한인들’은 ‘카이로회의 결정이 2300만 한인들로 하여금 해방을 맞게’했다며 장 주석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미문화협회는 이승만 계열 한인 단체로 1940년대 민족운동과 외교활동 분야에서 활약했다. ‘김첨생’은 이를 지원한 하와이의 김창순(1904-1977) 목사로 추측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식에서 이승만(오른쪽)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나란히 앉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눈빛 출판사

김창순 목사는 함경북도 영흥 출신으로 1926년에 하와이로 이주했다. 1936년에 중앙 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됐다. 1939년 11월 12일에 민족문화 전파를 목적으로 ‘한미문화협회’를 조직했고 1940년 호놀룰루 한인기독교회에 부임하여 이원순 등 동지회 계열 인물들과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1940년대 미주 한인 단체가 미국뿐 아니라 중국 국민정부를 상대로 한국 독립선언을 위해 외교활동을 전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6·25 당시 학도병으로서 참전했던 고병헌 선생이 지난달 28일 전남 순천역에서 6·25 참전 학도병들을 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던 선열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발굴하고 예우하며 후대에 계승하는 것은 ‘국가를 위한 헌신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며 “보훈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사료 수집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는 독립운동가를 발굴·포상하는 한편, 독립운동 역사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보훈부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독립운동 자료가 대만에 상당수 소장되었을 것으로 보고 추후 대만 유관당국과 협조를 강화할 예정이다. 보훈부가 사료들을 공개한 이날은 한국광복군 창설 83주년이다.

철기 이범석 장군. /조선일보 DB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됐다. 우리 국군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 대한민국 정부인 이승만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장군이다.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는 지난 12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광복군유족회는 지난 15일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각각 기념식을 열어 광복군을 기렸다.